
재영형
초와 촛대와 향과 풍경을 보냅니다.
초와 촛대는 제가 사는 동네에 있는 용문성당에서 샀습니다. 용문성당은 박해받던 천주교신자들이 세운 성당이에요.
무려 1908년에 세워진 오래된 성당이랍니다. 종교적 신념으로 박해받던 사람들의 의지와 사랑과 기도로 만들어진 성당에서 산 초와 촛대이니 선희언니와 은수를 향한 기도도 잘 들어주실 거라 믿어요.
향은 오사카에 사는 친구한테 받은 건데 선희언니와 은수에게 주고 싶네요. 두 분이 맘에 들어하길 바랍니다. 풍경은 소리가 너무 좋아 골랐어요.
바람이 불어 풍경에서 소리가 나면 선희언니와 은수가 다녀간 거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저도 형이 계신 월롱창고에 가끔 바람이 불어 소리가 나는 상상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풍경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언니와 은수에게 안부를 묻는 상상을 하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귀한 아기 은수를 만났던 모든 순간이 제 마음에 도장처럼 찍혀 있어요. 아마도 몇 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럴거예요. 은수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기쁨을 준 아기입니다. 저는 은수에게 받을 것을 다 받았어요. 은수가 제게 준 기쁨이 충분합니다. 잊지 않을 거예요.
저의 폭풍같았던 이십대에 선희언니 같은 사람을 만난 게 축복이었어요. 언니 덕분에 제 마음도 커지고, 때로 의지도 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었어요. 선희언니는 제가 아는 사람중에서도 아주 독보적인 사람이에요. 제 인생에서 언니를 만난 게 정말 다행입니다.
그리고 재영형, 너무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제가 선희언니를 만나고 은수를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형 덕분에 언니와 은수를 추모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제가 언니와 은수를 잊지 않는 것처럼 형도 스스로의 존엄과 귀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그러지 않으면 저의 이십대와 삼십대, 그 시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저의 현재가 너무도 허무할 것 같아요. 비록 스스로 징역살이를 한다고 하지만, 형의 존재가 책임지고 있는 많은 생명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건강하고 또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2021.07.27
은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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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악흥의 순간 여섯Six moments musicaux, D 780, Op 94
1. Moderato in C major
2. Andantino in A-flat major
3. Allegro moderato in F minor
4. Moderato in C-sharp minor
5. Allegro vivace in F minor
6. Allegretto in A-flat major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피아노
From Festival de La Roque d'Anthér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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