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소식 : 이성선

소식 / 이성선나무는 맑고 깨끗이 살아갑니다그의 귀에 새벽 네 시의 달이 내려가 조용히 기댑니다 아무 다른 소식이 없어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이성선, 세계사, 2000)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rtita no. 1 in B minor BWV 1002Ⅰ. AllemandaⅡ. DoubleⅢ. CorrenteⅣ. Double. PrestoⅤ. SarabandeⅥ. DoubleⅦ. Tempo Di BoreaⅧ. Double기돈 크레머Gidon Kremer 바이올린in front of the gleaming gold altar of the Church of St. Nikolaus in Locken..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폭설 : 류근

폭설 / 류근​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결별의 예감 한 잎살아서 바라보지 못한 푸른 눈시울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내 이름 위에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눈이 내린다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 - 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 201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 안탈 살라이 - 오늘 : 심재휘

오늘 /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수많은 어둠들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앉아 있을 테지, 벗겨도 벗겨도 끝내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그런 것이다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우리..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입춘일기 : 이해인

입춘 일기 / 이해인 겨울이 조용히 떠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봄이 살그머니 다가와 나에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 또 만나서 반가워요 딱딱한 생각을 녹일때 고운 말씨가 필요할때 나를 이용해 주세요. 어서오세요 봄!! 나는 와락 봄을 껴안고 나비가 되는 꿈을 꿉니다. - 시집 『이해인 시전집2』(문학사상, 2013)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한 나무가 있었네 : 박남준

한 나무가 있었네 / 박남준    쉬지 않고 계율처럼 깨어나 흐르는 물소리와 저 아래로부터 일어나 온 산을 감싼 구름으로 두어 발 한세상이 자욱해질 무렵 죽어 쓰러진 나무등걸 모아 불 지핀다. 맵다. 상처처럼 일어나는 연기. 산중 나무 한 그루 태어나 숨 거두기까지 한 생각 그랬겠다 쓸쓸했을 지난날의 외로움이 울먹울먹 피어나서 이렇게 눈물나게 하는 것인지. 타오르며 전해오는 푸른 나무의 옛날. 불꽃, 참 따듯한 그리움-『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박남준, 실천문학사, 2021, 43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rtita no. 1 in B minor BWV 1002Ⅰ. AllemandaⅡ. DoubleⅢ. Corr..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토마스 체헤트마이어 -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 이병률

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 / 이병률​나 무엇이든 잘 기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당신 모르는 잠버릇을 기록할 수 있다면​문신을 그리겠다는 당신 살갗을 내 시간으로 쓰다듬을 수만 있다면​당신의 닳은 뼈와 기억이 되어 폭설로 잠들 수 없는 밤에 당신 역사와 내통할 수 있다면​어느 신성한 연기 되어 당신 온몸을 방부할 수 있다면​한 줄 위에 나란히 이불로 널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의 광채를 다 가질 수만 있다면​어느 생에서 한 번 당신에게 부딪혔던 작은 새의 파닥거리는 심장이 되어 당신 손아귀에서 안식할 수 있다면​그래서, 그리하여, 그럼에도 따위의 말들을 앞세운 추신들이 모두 당신에게 귀결될 수 있다면​그러고도 이 편지의 맨 끝에 꾹꾹 눌러 쓰나니 부디​당신은 사라지지 말아라​-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병률..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오늘 : 심재휘

오늘 /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수많은 어둠들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앉아 있을 테지, 벗겨도 벗겨도 끝내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그런 것이다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우리..

차이콥스키 바이올린협주곡 : 알레나 바에바 - 곰소에서 : 이대흠

곰소에서 / 이대흠​ 나무를 덧대어 만든 커다란 소금창고는 기울어져 있었다 평생을 물에서 오신 소금을 모신 곳이었으니 여전히 물이 들어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물이 들어와 있을 때보다 썰물 때 더 기울어져 있었다​내게 남은 것은 그대가 남기고 간 한줌 소금 같은 그리움이니!​베인 상처에 갯물이 들 때처럼 마음 안이 쓰리고그대 떠나고 나도 그대 쪽으로 기울어졌다​해가 질 것이고 바닷바람에 나는 낡아갈 것이다조금 더 기울어질 것이다​-(이대흠, 창비, 2010)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바이올린협주곡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1878)I. Allegro moderatoII. Canzonetta: Andan..

슈베르트 즉흥곡 넷 D. 899, 피아노 소품 셋,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편지 : 신경림

편지 / 신경림-시골에 있는 숙에게 ​신새벽에 일어나비린내 역한 장바닥을 걸었다.생선장수 아주머니한테동태 두 마리 사 들고목롯집에서 새벽 장꾼들과 어울려뜨거운 해장국을 마셨다.​거기서 나는 보았구나장바닥에 밴 끈끈한 삶을,살을 맞비비며 사는그 넉넉함을,세상을 밀고 가는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생각느니보다 삶은더 크고 넓은 것일까,더 억세고 질긴 것일까.네가 보낸 편지를주머니 속으로 만지면서손에 든 두 마리 동태가떨어져나갈 때까지숙아, 나는 걷고 또 걸었구나,크고 밝은 새해의 아침해와골목 어귀에서 마주칠 때까지걷고 또 걸었구나.​​-『달 넘세』(신경림, 창작과비평사, 1985, 1998)   Grigory Sokolov plays Schubert, Beethoven, Rameau, and Brahms 프란..

바흐 바이올린소나타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 프랑크 페터 짐머만, 엔리코 파체 - 나마스카 : 박두규

나마스카 / 박두규 그대의 영혼에 안부를, 나마스카강 노을과 함께 산마루에 해가 저물고이승의 하루가 스러지는 시간이 되어서야겨우 그대를 떠올리게 됩니다세상 속 홀로 저무는 하루를 보며아직도 남아 있는 내 안의 외로움과 두려움으로하루의 끝에서 그대를 생각합니다나마스카, 아름다운 내 영혼 그대여종일토록 그대를 찾아 헤맨 고단한 육신도말없이 곁을 지켜준 모든 것들에도어둠 속 야윈 달빛에 기대어 안부를 전합니다나마스카, 깊은 밤 고요를 흐르는 은하여아직도 세상의 화려한 불빛을 좇아 흐르는 저에게별빛에 젖은 촉촉한 눈망울과숲속의 부드러운 바람결을 기억하게 하소서그것이 모두 그대가 보내는 안부임을 알게 하소서나마스카, 사랑인 줄 알게 하소서 -『은목서 피고 지는 조울躁鬱의 시간 속에서』(박두규, b, 202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