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2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멀리서 가까이서 쓴다 : 박남준

멀리서 가까이서 쓴다 / 박남준​​ 멀리서 가까이서,쓴다 사는 일도 어쩌면 그렇게덧없고 덧없는지후두둑 눈물처럼 연보라 오동꽃들,진다 덧없다 덧없이 진다이를 악물어도 소용없다​모진 비바람 불고 비,밤비 내리는지 처마끝 낙숫물 소리잎 진 저문 날의 가을숲 같다여전하다 세상은이 산중, 아침이면 봄비를 맞은 꽃들 한창이겠다​하릴없다지는 줄 알면서도 꽃들 피어난다어쩌랴, 목숨 지기 전엔 이 지상에서 기다려야 할그리움 남아 있는데 멀리서,가까이서 쓴다너에게, 쓴다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박남준, 실천문학사, 2010)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

쇼팽 녹턴, 마주르카, 스케르초, 뱃노래, 폴로네이즈 환상곡 :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 마음 : 곽재구

마음 / 곽재구 아침저녁방을 닦습니다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꼭 한 군데입니다작은 창 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붓습니다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언제나 비어 있지만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자리입니다. -(곽재구, 창비, 1995)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Chopin(1810-1849)녹턴 20번Lento con gran espressione in C sharp minor (WN 37)마주르카 26번Mazurka in E minor, Op. 41 No. 1마주르카 27번Mazurka in B major, Op. 41 No. 2마주르카 28번M..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17번, 8번, 1번, 바이올린소나타 9번 ‘크로이처’ :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파벨 밀류코프, 드미트리 마슬레예프, 콘스탄틴 에멜랴노프 -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1) : 권정생

인간성에 대한 반성문(1) / 권정생 주중식한테서 소포 하나가 왔다.끌러보니 조그만 종이상자에 과자가 들었다.가게서 파는 과자가 아니고 집에서 만든것 같다.소포에다 폭탄도 넣어 보냈다는데.....잠깐 동안 주중식과 나 사이에 무슨 문제가있는지 생각했다.십 년이 넘도록 알고 지냈지만 원한 살 일은없는 것 같다.과자 부스러기를 하나 혀끝에 대어보니 아무렇지 않다.좀 더 큰 것을 집어 먹어봐도 괜찮다.한 개를 다 먹고 다섯 시간 지나도안 죽는다.겨우 마음이 놓인다.주중식과 나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없이돈독함이 확인되었다. - 계간 『사람의 문학』(1997 가을)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피아노소나타 17번 ‘템페스트’Pia..

알베니스 피아노 모음곡 '이베리아' 제1권, 드보르자크 피아노삼중주 3번 : 일리안 가르네츠, 솔 가베타, 벤자민 그로브너 - 가을의 요일들 : 김경미

가을의 요일들 / 김경미​​가을의 월요일은뭐든 제대로 만들려는 맨드라미처럼 오고​가을의 화요일은겹겹이 빽빽한 손길을 모은 국화처럼 오고​가을의 수요일은 입에 써서 몸에 좋은쑥부쟁이 구절초처럼 오고목요일과 금요일은작은 흔들림으로 산과 들과 바다를 뒤흔드는갈대와 억새, 코스모스와 강아지풀로 오고​가을의 토, 일요일은가을의 일주일을수수 억만 번 지켜온 높고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서날 기다리고 있는그 사람처럼 오네.​-『카프카식 이별』(김경미, 문학판, 2020, 152쪽)    이사크 알베니스Isaac Albéniz(1860-1909)피아노 모음곡 '이베리아' 제1권Iberia 1st book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1841–1904)피아노삼중주 3번Klaviertrio Nr. 3 f-Mol..

브람스 바이올린소나타 2번,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4번, 슈만 바이올린소나타 1번 :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1946-1994)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아무리 아쉬워도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나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제각기 모두 제철을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혹 그 언제인가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서로 속살일 것이다.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어느 한 가슴에도메아리의 먼 여운조차남기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삶의 노래가왜 멎어야 하겠는가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영원도 있어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내가 어찌 마지막으로눈을 감는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 - 1897), 바이올린소나타 2번Sona..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16번, 14번, 환상곡 4번,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7번, 32번 : 그리고리 소콜로프 - 바람을 입었던 오후가 있었다 : 이대흠

바람을 입었던 오후가 있었다 / 이대흠 ​당신은 사랑을 안치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습니다 어떤 수위는 감정의 기화점을 예상합니다잣죽을 데우고 뜨거운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것만으로도당신은 내가 준비한 사랑과 같아졌습니다 당신의 손을 만지는 물소리가 좋았습니다당신의 몸을 드나드는 공기가 부러웠습니다어떤 음악도 당신의 숨소리보다 아름답지 않아서나는 내 호흡마저 꺼버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머무는 동안을 포장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스쳐 지나기만 했던 바람인데어떤 바람은 옷처럼내 몸에 꼭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코끼리가 쏟아진다』(이대흠, 창비, 2022)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피아노소나타 16번 ‘단순한’ 소나타, 빈,..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당신이라는 말 : 나호열

당신이라는 말  / 나호열     양산 천성산 노천암 능인 스님은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스무 첩 밥상을 아낌없이 산객에게 내놓듯이 잡수세요 개에게 공손히 말씀하신다 선방에 앉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싸우든 말든 쌍욕 앞에 들어붙은 개에게 어서 잡수세요    강진 주작산 마루턱 칠십 톤이 넘는 흔들바위는 눈곱만한 받침돌 하나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구르지 않는다     개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과   무거운 업보를 홀로 견디고 있는   작은 돌멩이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가   그저 말없이 이름 하나를   심장에서 꺼내어 놓는 밤이다    당신 -(나호열, 에코리브로, 2023, 295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rt..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더블 베이스 버전) : 도미니크 바그너, 아우렐리아 비소반 - 하늘 마당 : 나호열

하늘 마당 / 나호열 하늘을 구름이 쓸고 닦는다한 구름이 지나가면다른 구름이아무도 가지 않은아무도 가지 못한무량한 하늘마당을쟁기질한다 이윽고 가을 하늘은푸르고 깊어져서어느 사람은 몇 필씩 끊어내어가슴 속에 향낭을 만들고긴 편지를 쓰기도 한다 나는 안다저 하늘마당에 밤이 오면고이 뿌린 그 누군가의 눈물이별로 돋아 오르는 것을한 뜸 두 뜸 모이고 모여빛나는 화관을 비단 손길로 고이 얹어주는 것을 《안부》(나호열, 밥북, 2021, 34~35쪽)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아르페지오네 소나타Sonata in a-minor for arpeggione and piano 도미니크 바그너Dominik Wagner 더블 베이스(double bass) and 아우렐리아 비소반Aure..

모차르트 피아노삼중주 6번 : 드미트리 스미르노프, 솔 가베타, 알렉산드라 도브 - 가을편지 : 김용택

가을편지 / 김용택​귀뚜라미가 웁니다.귀뚜라미 울면이불을 끌어다 덮는 찬바람이 불지요.벼들이 패고, 수수모가지에 참새들이 앉고, 억새가 핍니다.하얀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는 강가에 가고 싶습니다.강에 언덕에그대 마음 가장자리에 잔물결이 와닿겠지요강가에 서서서쪽으로 지는 가을 하늘의 노을도 보고 싶고노을이 빠진 강물도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습니다.그 당신을요.​​- 『속눈썹』(김용택, 마음산책, 2011)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1756-1791)피아노삼중주 6번Klaviertrio G-Dur, KV 564Ⅰ. AllegroⅡ. AndanteⅢ. Allegretto encoreRobert Schuman, Klavierquartett Es-Dur, Op.47Ⅲ. ..

베토벤 첼로소나타 2번, 3번, 피아노소나타 17번,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1번, 파스토랄레 3악장 : 마리아 조앙 피레스, 안토니오 메네세스 - 아침을 기리는 노래 : 문태준

아침을 기리는 노래  / 문태준  시간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누어주시네햇볕, 입술 같은 꽃, 바람 같은 새, 밥, 풀잎 같은 잠을 나는 매일 아침 샘에 가 한통의 물을 길어오네물의 평화와 물의 음악과 물의 미소와 물의 맑음을 내 앞에는 오늘 내가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이 있네갈림길과 건널목, 1월 혹은 3월 혹은 9월 혹은 눈송이, 첫 번째, 분수와 광장, 거울그리고 당신 당신이라는 만남당신이라는 귀당신이라는 열쇠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문태준, 창비, 2015)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첼로소나타 2번Sonate pour violoncelle et piano en sol mineur op. 5 n°2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