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쓰다 / 심재휘 어제는 꽃잎이 지고오늘은 비가 온다고 쓴다현관에 쌓인 꽃잎들의 오랜 가뭄처럼바싹 마른 나의 안부에서도이제는 빗방울 냄새가 나느냐고추신한다 좁고 긴 대롱을 따라서둘러 우산을 펴는 일이우체국 찾아가는 길만큼 낯설 것인데오래 구겨진 우산은 쉽게 젖지 못하고마른 날들은 쉽게 접히지 않을 터인데 빗소리처럼 오랜만에네 생각이 났다고 쓴다여러 날들 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많은 것들이 말라 버렸다고비 맞는 마음에는 아직가뭄에서 환도하지 못한 것들이많아서 너무 미안하다고 쓴다 우습게도 이미 마음은오래전부터 진창이었다고쓰지 않는다우산을 쓴다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심재휘, 최측의 농간, 2017, 94-95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