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6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여름날 / 허형만

여름날 / 허형만- 성모 마리아​제가 당신의 그림자 끝에서도평화와 안식을 꿈꿀 수 있음은먼길 부르튼 아픔이 있기 때문입니다때로는 천둥 치고 벼락 치는그토록 긴긴 세월 속에서도푸른 바람과 넉넉한 기쁨으로이 여름을 지탱할 수 있음은제가 당신의 서러움까지도고이 품어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저는 늘 당신 가까이에 있고당신은 저로부터 멀리 계시나눈빛만으로도 손길만으로도눈물겨운 사랑을 전할 수 있음은참으로 더없는 행복입니다 ​-『비 잠시 그친 뒤』(허형만, 문학과지성사, 1999)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여름꽃 : 유승도

여름꽃 / 유승도​ 그리움이 쌓여 피어나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년의 여인으로 다가온다 맨가지의 애처로움 끝에 피어 숲의 푸르름을 불러내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나뭇잎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게 웃는다 울긋불긋 커다란 소리로 거친 산야를 수놓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작은 몸짓으로 소리없이 피고 또 진다 -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유승도, 창작과비평사, 2013)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I. Allegro ma non troppoII. LarghettoIII. Rondo - Alleg..

슈베르트 즉흥곡 넷 D. 899, 피아노 소품 셋,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산수국 : 허형만

산수국 / 허형만​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한 삶이 아름다웠지한 삶이 눈물겨웠지​ - 『가벼운 빗방울』(허형만, 작가세계, 2015)     Grigory Sokolov plays Schubert, Beethoven, Rameau, and Brahms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즉흥곡 1번Impromptu 1 in C minor Op. 90, D. 899즉흥곡 2번Impromptus Nr. 2 in E flat major Op. 90, D 899즉흥곡 3번improm..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 이반 피셔, 세르주 첼리비다케 - 삶 : 이시영

삶 / 이시영​    새벽녘 대문을 활짝 열어젖힌 추탕집 펄펄 끓는 가마곁에서 플라스틱 수조 얕은 물을 튀기며 미꾸라지들이 아주 순하게 놀고 있다.​- 이시영, 『은빛 호각』(창비, 2003)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교향곡 8번 '미완성'Sinfonie h-Moll D 759 „Unvollendete“ Symphony No 8 B minor UnfinishedI. Allegro moderatoII. Andante con moto 부다페스트페스티벌오케스트라Budapest Festival Orchestra이반 피셔Iván FischerFebruary 28, 2014 at the Béla Bartók National Concert Hall in Budapesth..

브루크너 교향곡 9번 : 마리스 얀손스, 이반 피셔 - 삶 : 김용택

삶 / 김용택 ​매미가 운다.움직이면 덥다.새벽이면 닭도 운다.하루가 긴 날이 있고짧은 날이 있다.사는 것이 잠깐이다.사는 일들이 헛짓이다 생각하면,사는 일들이 하나하나 손꼽아 재미있다.상처받지 않은 슬픈 영혼들도 있다 하니,생이 한번뿐인 게 얼마나 다행인가.숲 속에 웬일이냐, 개망초꽃이다.때로 너를 생각하는 일이하루종일이다.내 곁에 앉은주름진 네 손을 잡고한 세월 눈감았으면 하는 생각,너 아니면 내 삶이 무엇으로 괴롭고또 무슨 낙이 있을까.매미가 우는 여름날새벽이다.삶에 여한을 두지 않기로 한,맑은새벽에도 움직이면 덥다.​-(김용택, 위즈덤하우스, 2015)       알반 베르크Alban Berg(1885~1935)바이올린 협주곡Violinkonzert'한 천사를 기억하며‘»Dem Andenken e..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몫 : 안희연

몫 / 안희연​앞니가 부러지는 꿈을 꿨어이가 상하는 꿈은 백이면 백 흉몽이라던데​이제는 호들갑 떨지 않는다몫이었겠지,생각한다​몫이라는 말을 처음부터 사랑했던 것은 아니야악어처럼 나를 물고 한참을 놓아주지 않았지모든 걸 원점으로 되돌리는 말이잖아다른 방도는 없다는 듯이어디 한 번 달아나보라는 듯이​이런 장면이 겹쳐지기도 했어죽은 토끼를 가운데 두고 맹렬히 싸우는 두 사람묻자고 말하는 쪽과 묻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쪽각자의 몫이 있었을 거야토끼는 그저​유독 피곤했던 것일 수도그날따라 잠이 미로처럼 깊어 약속 시간에 조금 늦은 것이었을지도​어떻게 다 알 수 있겠어피에로의 고깔모자가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물총새의 속눈썹이 견딜 수 있는 무게는 얼마인지죽음이 드나드는 문은 어디에 있는지​몫이라고 생각하면조금..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아무리 아쉬워도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나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제각기 모두 제철을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혹 그 언제인가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서로 속살일 것이다.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어느 한 가슴에도메아리의 먼 여운조차남기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삶의 노래가왜 멎어야 하겠는가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영원도 있어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내가 어찌 마지막으로눈을 감는가.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김남주, 창작과비평사, 1995, 128-129쪽)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

드보르자크 피아노오중주 2번 : 오이스트라흐현악사중주단, 엘리소 비르살라제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안희연 온전히 나를 잃어버리기 위해 걸어갔다언덕이라 쓰고 그것을 믿으면 예상치 못한 언덕이 펼쳐졌다그날도 언덕을 걷고 있었다 비교적 완만한 기울기적당한 햇살가호를 받고 있다는 기쁨 속에서 한참 걷다 보니 움푹 파인 곳이 나타났다고개를 들자 사방이 물웅덩이였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언덕은 울상을 하고서얼마 전부터 흰토끼 한 마리가 보이질 않는다 했다 그 뒤론 계속 내리막이었다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밤이 왔다언덕은 자신에게아직 토끼가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우리..

바흐 무반주첼로 모음곡 1번, 2번, 3번 : 알렉산드르 크냐제프 - 망종 : 안희연

망종 / 안희연    며칠만에 돌아온 그는 어딘가 변해 있었다 눈동자에는 밤의 기운이 가득했다   대체 어딜 다녀온 거예요?    그는 말없이 서서 한참 동안 볕을 쬐더니 앞으로는 돌을 만지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 그는 돌을 주워오기 시작했다 그는 거의 모든 시간을 돌과 보냈다 마당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돌이 쌓여 갔고   그는 자주 돌처럼 보인다 나는 그가 돌이 되어버릴까봐 겁난다   눈부시게 푸른 계절이었다 식물들은 맹렬히 자라났다 누런 잎을 절반이 넘게 매달고도 포기를 몰랐다   치닫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듯   이제 그는 거의 돌이 되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 나의 안부를 살핀다 푸른 잎을 매단 화분이며 꽃을 가져온다   이제 그만 그를 보내고 삶 쪽으로 걸어나오라..

바흐 파르티타 1번,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7번, 슈베르트 피아노소나타 14번, 악흥의 순간 여섯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1879∼1944)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1879∼1944)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紅顔)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白髮)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Live in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2015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파르티타 1번Partita No. 1 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