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1815

드보르자크 피아노오중주 2번 :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엘리소 비르살라제 - 6월 : 이외수

6월 / 이외수​바람부는 날 은백양나무 숲으로 가면청명한 날에도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귀를 막아도 들립니다.​저무는 서쪽 하늘 걸음마다주름살이 깊어가는 지천명(知天命)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소낙비 쏟아지는 소리.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이외수, 고려원, 2000)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ín Dvořák(1841-1904)피아노오중주 2번Piano quintet in A major, No. 2, op. 81I. Allegro ma non tantoII.Dumka. Andante con motoIII.Scherzo (Fur..

바흐 바이올린소나타 1번, 2번, 3번, 4번, 5번, 6번 : 프랑크 페터 짐머만, 엔리코 파체 - 6월 : 김용택

6월  / 김용택 하루 종일당신 생각으로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하루 해가 갑니다​불쑥불쑥 솟아나는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창가에 턱을 괴고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 있곤 합니다​​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그것이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하루 종일당신 생각으로6월의 나뭇잎이바람에 흔들리고해가 갑니다​― 시선집 『집』(김용택, 시인생각, 201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바이올린과 쳄발로 소나타Sonata for violin and cembalo(BWV 1014-BWV 1019) 바이올린소나타 1번Sonata for Violin and Piano in B minor BWV 1014프랑크 페터 짐머만Frank Peter Zim..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이름 부르는 일 : 박남준

이름 부르는 일 / 박남준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린다초저녁 분꽃 향내가 문을 열고 밀려온다그 사람 이름을 불러본다문 밖은 이내 적막강산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가슴이 뜨겁고 아플 수가 있다니! -(박남준, 창비, 2005)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April' ..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 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물방울 우주』(이성선, 황금북, 2002) /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휴머니스트, 2015, 52쪽)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1번Violin Pa..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기타 버전) : 페트리트 체쿠 - 찔레꽃은 피고 : 신경림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찔레꽃은 피고 / 신경림​​이웃 가게들이 다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난 뒤까지도 그애는 책을 읽거나 수를 놓으면서 점방에 앉아 있었다. 내가 멀리서 바라보며 서 있는 학교 마당가에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었다. 찔레꽃 향기는 그애한테서 바람을 타고 길을 건넜다.​꽃이 지고 찔레가 여물고 빨간 열매가 맺히기 전에 전쟁이 나고 그애네 가게는 문이 닫혔다. 그애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오랫동안 그애를 찾아 헤매었나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그애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나루 분교에서, 아이들 앞에서 날렵하게 몸을 날리는 그애가 보였다. 산골읍 우체국에서, 두꺼운 봉투에 우표를 붙이는 그애가 보였다. 활석 광산 뙤약볕 아래서, 힘겹게 돌을 깨는 그애가 보였다. 서울의 뒷골목에서, 항구의 술집에서, 읍내의 건어..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2번, 3번 : 기돈 크레머 -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천양희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 / 천양희​마음 끝이 벼랑이거나하루가 지루할 때마다바람이라도 한바탕 쏟아지기를 바랄 때가 있다​자기만의 지붕을 갖고 싶어서우산을 만들었다는 사람을 떠올릴 때마다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비바람 속을 걸어가던 네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를 생각할 때마다바람은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서로 부르며 손짓하는 것이라던절절한 구절을 옮겨 적고 싶을 때가 있다​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라고 다른 얼굴을 할 때마다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던 죽은 시인의 시를 중얼거릴 때가 있다​여러번 내가 나를 얻지 못해 바람을 맞을 때마다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오래 일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이 세상 어디에 꽃처럼 피우는 바람이 있다면바람에도 방향이 있고 그 속에도 뼈가 있다고 ..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 : 엘리자베스 레온스카야 -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5 :나호열

아무도 부르지 않는 노래 5 / 나호열  유채꽃밭에 서면 유채꽃이 되고높은 산 고고한 눈을 보면 눈이 되고불타오르는 노을을 보면 나도 노을이 되고겨울 하늘 나는 기러기 보면그 울음이 되고 싶은 사람아어디서나 멀리 보이고한시도 눈 돌리지 못하게 서 있어눈물로 씻어내는 청청한 바람이려니 지나가는 구름이면 나는 비가 되고나무를 보면 떨어지는 나뭇잎 되고시냇물을 보면 맑은 물소리가 되는 사람아하루하루를 거슬러 올라와깨끗한 피돌기로 내 영혼에 은어 떼가 되리니나는 깊어져가고너는 넓어져가고그렇게 내밀한 바다를 만들어가는어디에 우리의 수평선을 걸어놓겠느냐목숨아, 사람아 -『울타리가 없는 집』(나호열, 에코리브로, 2023, 36쪽)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 고정희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 고정희   오월의 융융한 햇빛을 차단하고 아파서 몸져누운 날은 악귀를 쫓아내듯 신열과 싸우며 집 안에 가득한 정적을 밀어내며 당신이 오셨으면 하다 잠이 듭니다  기적이겠지 기적이겠지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나는 아마 생의 최후 같은 오 분을 만나고 말거야 나도 최후의 오 분을 셋으로 나눌까 그 이 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이 분간은 이 지상의 운명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 일 분간은 내 생을 뒤돌아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거야 그게 나의 마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 하며 왼손가락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

브람스 바이올린소나타 2번,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4번, 슈만 바이올린소나타 1번 :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1946-1994)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아무리 아쉬워도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나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제각기 모두 제철을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혹 그 언제인가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서로 속살일 것이다.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어느 한 가슴에도메아리의 먼 여운조차남기지 못할 수 있다.그러나 삶의 노래가왜 멎어야 하겠는가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영원도 있어희망이 있다.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내가 어찌 마지막으로눈을 감는가.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1833 - 1897), 바이올린소나타 2번Sonata..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아카시아 : 나희덕

아카시아 / 나희덕​저무는 봄날 하얀 비 맞으며나는 그 길 위로 걸어왔습니다숨막힐 듯 단내 나던 꽃송이산산이 부서져 뼛가루처럼어디론가 불려가는 날,마른 꽃잎을 한 줌 움켜보니금방이라도 소리를 낼 것만 같습니다당신은 얼마나 한숨을 잘 쉬시던지모두 여기 날아와 쌓인 듯합니다한숨 한 줌이렇게 되려고 달려온 건 아니었는데머리 위의 꽃비는 하염없습니다​-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나희덕, 창작과비평사, 1994, 35쪽)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