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
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
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
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
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
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
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수많은 어둠들
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
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
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
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을 테지, 벗겨도 벗겨도 끝내
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
그런 것이다
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
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
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
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
우리는 조금 쓸쓸해지면 그만이다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심재휘, 최측의 농간, 2017, 6~7쪽)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
'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
'April' 눈송이(Snowdrop) Allegretto con moto e un poco
'May' 백야(White Nights) Andantion
'June' 뱃노래(Barcarolle) Andante cantabile
'July' 수확의 노래(Reaper's Song) Allegro moderato con moto
'August' 추수(The Harvest) Allegro vivace
'September' 사냥(The Hunt) Allegro non troppo
'October' 가을의 노래(Autumn Song) Andante doloroso e molto cantabile
'November' 삼두마차(On the Troika) Allegro moderato
'December' 크리스마스(Christmas) Tempo di Valse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 피아노
Denis Matsuev, a virtuoso in the grandest of Russian pianistic tradition, gave this remarkable recital
Live from the Roy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lFgkZjFp8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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