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듣는 음악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은수와 갔던 케테 콜비츠 전시회를 회상하며

들꽃 호아저씨 2021. 8. 1. 17:20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피아노소나타 29번 ‘함머클라비어’Piano Sonata No. 29 in B-flat major, Op. 106 "Hammerklavier"

 I. Allegro

​ II. Scherzo : Assai vivace

​ III. Adagio sostenuto

 IV. Introduzione : Largo...Allegro - Fuga : Allegro risoluto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피아노

Recorded at the Berliner Philharmonie (Berlin, Germany) on June 5, 2013

https://www.bilibili.com/video/BV1JK4y1V7Sf/?spm_id_from=333.337.search-card.all.click

유은수 - 케테 콜비츠 전시회에서

 

은수야

 

뜨거운 여름이구나

어느 해 여름, 엄마와 아버지는 은수를 데리고 케테 콜비츠 전시회에 갔지. 

케테 콜비츠는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해.

그의 그림, 조각, 판화는 늘 고통 받는 사람, 전쟁과 가난, 병과 굶주림 등

사회 약자에 대한 편견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드러내지.

 

우리 사회에서 보고 싶어하지 않고, 듣고 싶어하지 않는 타인의 고통을

케테 콜비츠는 외면하지 않았어. 

평생 소박했던 그의 삶만큼이나 케테 콜비츠는 사람에 천착했어. 

그는 사회에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 인간이 갖춰야 할 삶의 태도를 작품으로 말했지.

 

엄마가 그림을 좋아해서 전시회를 자주 가기도 했지만

엄마와 아버지는 은수가 사람들, 고통받는 이들을 잊지 않는 아이가 되길 바랐는지도 몰라. 

은수는 충분히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아이였으니까. 

 

 

은수 엄마 신선희와 유은수

 

 

아침에 절망적인 상태에서 눈을 떴다. 페터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린 것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은 없었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그들이 앞으로 해야 할 문화적인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청년기를 계속 알차게 보내야만 하는데.... 하지만 페터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그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이 소년의 마음을 돌려 놓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남편이 그에게 말했다. ‘조국은 아직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만약 그렇다면 벌써 불렀을거야.’ 그러자 페터가 대답했다. ‘조국이 내 나이 또래를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나는 필요로 하고 있어요’.... 나는 일어섰다. 페터가 뒤따라 왔다. 우리는 문 가에 서서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남편에게도 페터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순간.

 

-'케테 콜비츠 일기' 중에서

 

피에타 - 캐테 콜비츠 Käthe Kollwitz(1867-1945)

 

은수야

케테 콜비츠는 사랑하는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21일 후, 1914년 10월 30일 아들이 전사했다는 전문을 받았어.

아들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그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니.

자식을 떠나 보낸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싶지 않은데, 

아프게도 케테 콜비츠의 참척의 고통을 은수와 엄마를 떠나 보낸 아버지는 너무도 잘 알지.

그는 전쟁터에서 죽은 아들에 대한 통한을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어.   

 

* 참척: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

 

페터야.

이 독일의 젊은이야.

얘야. 사랑스런 나의 아들아.

네가 그렇게 황급히 떠난 지도 두 달이 되었구나.

나의 페터야. 나는 계속 너의 뜻에 충실하련다.

너의 뜻이 무엇이었던가 잊지 않고 지켜가련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그것은 나의 조국을 사랑하는 일이다.

네가 너의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했듯이 나도 나의 방식으로 조국을 사랑하련다.

나는 때묻지 않은 마음으로 진정으로 참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노력할 때 나의 페터야.

제발 내 곁에 머물러다오.

나에게 모습을 보여다오.

 

- '케테 콜비츠 일기' 중에서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 - Käthe Kollwitz(1867-1945)

 

 

은수야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해.

엄마는 은수가 떠나고 차마 가슴에도 묻지 못하고 너를 혼자 두지 못해 네 곁으로 아주 갔지.

은수와 엄마가 떠난 아버지의 화원은 이제 희망이라는 꽃은 피지 않아. 

절망만이 아버지 곁에 머물러 있어.

누군가는 희망의 꽃은 절망 속에서 핀다고 하더라.

아버지의 화원에 희망의 꽃, 춤추는 나비는 날아오지 않겠지만

은수, 은수엄마 신선희, 노동, 음악이 있으니 비참한 내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으련다.

매순간 참척의 고통으로 내 삶이 피폐해도 

케테 콜비츠가 아들을 전쟁터에서 잃고 페터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려고 했던 것처럼

아버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지.

은수와 엄마가 죽음으로, 온몸으로 말하고자 한 학교 폭력, 삶의 태도에 대해

시나브로 기억할 수 있도록 아버지는 결코 폐허 위에 주저앉지 않을 거야.

 

은숙 이모는 아버지에게  

스스로의 존엄과 귀함을 간직하고 내가 책임지고 있는 많은 생명을 기억하라고 하더구나. 

우리 사회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곳곳에 있지.

아직도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에 있어.

아버지가 스스로 형벌을 내려 수감생활로 많은 것을 하지 못하지만

케테 콜비츠가 사람, 고통 받는 이들을 잊지 않고 머물렀던 것처럼

아버지는 사회에서 고통 받다 떠난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은수와 엄마를 위해 아버지의 방식, 음악으로 진혼을 하고 기억해.

 

은숙 이모 말처럼 아버지는 스스로의 존엄과 귀함을 간직하려고 해.

매순간이 참척의 고통으로 뜨겁지만

은수와 엄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아버지 굳건히 살 거야. 

아버지는 은수와 엄마가 평온하기를

오늘도 초에 불을 밝히고 향을 피운다. 

 

하루가 저무는 즈음, 은수와 갔던 케테 콜비츠 전시회를 회상하며 

2021. 08. 01, 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