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우리말 이야기] ‘하선정 한포기 통째로 썰은 김치’

들꽃 호아저씨 2021. 12. 24. 01:07

 

 

9월엔 배춧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큰 문제가 됐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오히려 배춧값이 폭락할 우려가 있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춧값이 1만 원을 훌쩍 넘자 식당 등에선 아예 김치를 내놓지 못했을 정도였다. 일반 가정에서는 김치를 담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김치를 생산하는 종가집이나 ‘CJ’ 같은 대기업도 서둘러 값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김치 대란이었다.

배춧값이 안정을 찾아 가던 10월 하순에 대형 할인점에 갔다가 일부러 김치 진열대 쪽으로 가 봤다. 여러 가지 김치 가운데 기자의 눈길을 끈 김치 하나. CJ하선정 한포기 통째로 썰은 김치였다. ‘하선정은 다들 알다시피 2009년 타계한 요리 연구가다. 그의 이름을 상표로 쓴 김치다. 하지만 하선정이 기자의 눈길을 끈 것은 아니다. ‘썰은 김치라서 그릇에 옮겨 담아 먹기만 하면 되니 편리하겠다 싶어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저널로그 말글 돋보기의 성격을 아는 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이 김치의 이름에 맞춤법에 어긋나는 게 있어서다.

바로썰은이란 말이 문제다. ‘썰은은 동사 썰다의 관형형이다. ‘썰다의 어간 에 어간이 받침으로 끝나는 용언의 관형형 어미 ‘-이 붙으면 어간의 받침이 탈락하게 된다. ‘이 탈락하게 되니 결과적으로 어간이 모음으로 끝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므로 매개 모음 는 필요 없으므로 ‘-이 아니라 ‘-을 붙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 때는 이 탈락하므로 +이 되는데 모음에 붙는 어미는 ‘-이 아니라 ‘-이므로 +이 되어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썰은 김치가 아니라 썬 김치라고 해야 맞춤법에 맞는 표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주 틀리는 예를 몇 가지 들면……

갈은 배간 배

거칠은 들판거친 들판

내게 시비를 걸은 녀석내게 시비를 건 녀석

기울은 탑기운 탑

눈길을 끌은 것눈길을 끈 것

빨랫줄에 널은 빨래빨랫줄에 넌 빨래

녹슬은 철마녹슨 철마

큰물에서 놀은 사람큰물에서 논 사람

늘은 것과 줄은 것는 것과 준 것

다물은 입다문 입

달은 사과단 사과

한숨 덜은 표정한숨 던 표정

머리가 돌은 사람머리가 돈 사람

드물은 일드문 일

둥글은 모양둥근 모양

손에 들은 것손에 든 것

떠들은 사람떠든 사람

우리가 만들은 물건우리가 만든 물건

국에 말은 밥국에 만 밥

돈에 눈이 멀은사람돈에 눈이 먼사람

……

우리말에서 어간이 받침으로 끝나는 용언의 활용은 좀 복잡하다. 다른 예는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설명하겠다.

이 김치 이름 가운데 한포기한 포기로 띄어 써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글을 쓰면서 처음부터 고민한 부분이 하나 있다. ‘배추값으로 쓸지, ‘배춧값으로 쓸지……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보면 대부분 배추값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 말이 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아 자연스레 그렇게 된 듯하다. 하지만 [ː추값]보다는 [ː추깝/ː춛깝]으로 소리 나는 게 현실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뒷말이 된소리로 나면 사이시옷을 받친다는 맞춤법 규정에 따라 배춧값으로 써야 한다. 담뱃값, 우윳값, 죗값처럼 말이다.

그리고 김치 생산 업체인 종가집[종가찝/종갇찝]으로 소리 나므로 사이시옷을 받쳐 종갓집으로 적어야 한다는 사실도 이 기회에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