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라벨 ‘볼레로’ : 알론드라 데 라 파라, 세르주 첼리비다케 - 조사와 싸우다 / 정일근

들꽃 호아저씨 2022. 6. 30. 16:40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

볼레로’Bolero

 

WDR Sinfonieorchester

알론드라 데 라 파라Alondra de la Parra

 

Maurice Ravels "Bolero", gespielt vom WDR Sinfonieorchester unter der Leitung von Alondra de la Parra am 27. Januar 2022 in der Kölner Philharmonie.

https://www.youtube.com/watch?v=cmNEvSFWftc

 

알론드라 데 라 파라Alondra de la Parra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l(1875-1937)

'볼레로'Bolero for Orchestra

 

덴마크국립방송심포니오케스트라 Danish National Radio Symphony Orchestra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71년

https://www.youtube.com/watch?v=gy5Ve3338-E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조사와 싸우다 / 정일근

내 시작의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

시를 퇴고할 때 조사는 추려내는 것

예를 들자면 이렇다, 이 시의 첫 문장

<내 시작의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를 두고도

나는 오랫동안 고민할 것이다

<의>라는 조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 시작 버릇 하나를 말하자면>로 고치거나

<를>이란 조사가 불편하면

<내 시작의 버릇 하나 말하자면>으로

고칠 것이다, 그 두 문장을 두고

밀고 당기고 여러 날을 끙끙거릴 것이다

이 버릇은 사실 조사와 싸우는 일

지난 여름에는 시집 한 권을 묶으며

시 속에 별처럼 뿌려진 조사와 싸웠다

<은> <는> <이> <가> <을> <를> 을

죽였다 살렸다, 살렸다 죽였다

만나는 조사마다 시비를 걸며 싸웠다

시를 노래하는 것은 하늘의 일이고

시를 다듬는 것은 사람의 일인지라

반복되는 노역에 몸져눕기도 했는데

가까이 지켜보던 아내가 웃는다

당신이 무슨 부처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냐, 며 웃는다

어이쿠! 답은 그 속에 있었구나

나는 전생에 부처 공부하다 만 땡초였는지

그놈 조사와 이렇게 싸우는구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도 베라고 했으니

나를 죽이는 일은 나를 살리는 일이다

조사를 죽여 시를 살리지도 못하면서

나는 죄 없는 조사와 싸우고만 있다

어디 보자, 이 시 속에도

시비 거는 조사 몇 놈 있을 것이니

나는 또 죽였다 살렸다 할 것이다

 

-<실천문학> (2003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