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비발디 ‘사계’ : 루카 술릭,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은수 노래를 들으며 : 은수 4주기에 부쳐

들꽃 호아저씨 2022. 10. 20. 02:39



은수 노래를 들으며

- 은수 4주기에 부쳐


은수야
세상 모든 것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졌다고 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원자들이 서로를 잡아끌고 때로는 밀며 세상 모든 것을 만든다는구나.
사람도 마찬가지야. 우리도 원자들의 모임이야.

하지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우리는 분명 원자들의 모임이지만, 원자들의 모임만은 아니라고 했어.
그는 우리 모두 제각각 유일한, 비교 불가능한 소중함의 근원에는 구별할 수 없는 원자들이 있다고 했지.

은수도 호아저씨와 은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이들에게 지구별의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능한 유일함이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하고 유일한 원자들의 짜임이 바로 너, 은수인 거야.

나는 며칠 전 엄마와의 이별을 겪었어.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지만 신의 다른 이름이라는 시간에 의지해 보려고 해.
하지만 시간이 흘러 슬픔의 총량이 조금 덜어진다고 해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을 거야. 아니 옅어지기는커녕 더 짙어지겠지.

은수도 그래.
은수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과 시간 속에는 은수에 대한 그리움으로 꽉 차 있어.
네가 떠난 햇수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그리움의 깊이는 더 깊어지지.

10월 20일, 오늘은 네가 떠난 지 4주기가 되는 날이야.
아직도 어느 곳에서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며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친구들이 있겠지. 하지만 ‘호아저씨 들꽃 블로그’처럼 4‧3, 4‧19, 5‧18, 4‧16, 미선이와 효순이, 혜영이와 용철이,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 모든 민족민주열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스며들 듯 작은 변화가 생길 거야. 세상의 모든 은수들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으로 치부되지 않고, 국가 폭력이나 사회 부조리에 의한 죽음이 그저 통계에 의지해 숫자로 환산하는 계량적 합리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겠지.

생명과 죽음은 추상 개념이 아니라고 했어.
회복이 불가능하고 대체가 불가능한 유일한 존재의 영원한 소멸이지.
그렇기에 한 개인의 죽음은 온 세계의 무너짐과 맞먹는 것이기도 해.
더구나 국가의 폭력이나 사회적 죽음의 개별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어떤 아름다운 말로도 위안될 수 없고, 경제로 겁박해도 영원히 탈상은 되지 않는다고 하지.
우리가 4‧3, 4‧19, 5‧18, 4‧16, 미선이와 효순이, 혜영이와 용철이, 민족민주열사, 그리고 은수를 기억하고 마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

은수야,
요즘 가을볕이 참 좋아.
뺨에 스치듯 와닿는 바람도 좋고,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은 왜 그리도 아름다운지.
하늘은 자연이 인간을 기쁘게 하고, 인간과 대화하기 위해 신이 가장 신경 써서 창조한 부분이라고 하더니 요즘 가을 하늘이 그렇구나.
너와 자연이 주는 이 경이로움을 함께하지 못해 서럽구나.
오늘은 너의 노래를 들으며 바람 따라 흐르는 가을 하늘의 구름을 보며 너를 기억하련다.

보고 싶구나!


2022. 10. 20.
10월의 아이가 된 은수를 기억하며 하루마음이.

 


유은수(1999년 3월 3일 - 2018년 10월 20일)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1678-1741) ‘사계’Four Seasons (Quattro Stagioni)
루카 술릭Luka Šulić(첼로 편곡) playing his own arrangement for cello of The Four Seasons by Antonio Vivaldi.
Spring (Allegro - Largo - Allegro)
Summer (Allegro non molto - Adagio Presto - Presto)
Autumn (Allegro - Adagio - Allegro)
Winter (Allegro - Largo - Allegro)

트리에스테의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극장 재단 오케스트라Orchestra della Fondazione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di Trieste
루카 술릭Luka Šulić - 트리에스테의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극장 라이브Live in Trieste,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https://www.youtube.com/watch?v=mTEFOa0hwzk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
'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
'April' 눈송이(Snowdrop) Allegretto con moto e un poco
'May' 백야(White Nights) Andantion
'June' 뱃노래(Barcarolle) Andante cantabile
'July' 수확의 노래(Reaper's Song) Allegro moderato con moto
'August' 추수(The Harvest) Allegro vivace
'September' 사냥(The Hunt) Allegro non troppo
'October' 가을의 노래(Autumn Song) Andante doloroso e molto cantabile
'November' 삼두마차(On the Troika) Allegro moderato
'December' 크리스마스(Christmas) Tempo di Valse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 피아노
Denis Matsuev, a virtuoso in the grandest of Russian pianistic tradition, gave this remarkable recital
Live from the Roy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lFgkZjFp8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