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소면 : 류시화

들꽃 호아저씨 2024. 2. 15. 20:35

 

 

소면 / 류시화 

당신은 소면을 삶고

나는 상을 차려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살구나무 아래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어 온

오래된 나무 아래서

국수를 다 먹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을

포개 놓은 뒤 당신은

나무의 주름진 팔꿈치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깐일 것이다

잠시 후면, 우리가 이곳에 없는 날이 오리라

열흘 전 내린 삼월의 눈처럼

봄날의 번개처럼

물 위에 이는 꽃과 바람처럼

이곳에 모든 것이 그대로이지만

우리는 부재하리라

그 많은 생 중 하나에서 소면을 좋아하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던

우리는 여기에 없으리라

몇 번의 소란스러움이 지나면

나 혼자 혹은 당신 혼자

이 나무 아래 빈 의자 앞에 늦도록

앉아 있으리라

이것이 그것인가 이것이 전부인가

이제 막 꽃을 피운

늙은 살구나무 아래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단 하나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

두 육체에 나뉘어 존재한다는 것이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영원한 휴식인가 아니면

잠깐의 순간이 지난 후의 재회인가

이 영원 속에서 죽음은 누락된 작은 기억일 뿐

나는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경이로워하는 것이다

저녁의 환한 살구나무 아래서

 

-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류시화, 열림원,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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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

'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

'April' 눈송이(Snowdrop) Allegretto con moto e un poco

'May' 백야(White Nights) Andantion

'June' 뱃노래(Barcarolle) Andante cantabile

'July' 수확의 노래(Reaper's Song) Allegro moderato con moto

'August' 추수(The Harvest) Allegro vivace

'September' 사냥(The Hunt) Allegro non troppo

'October' 가을의 노래(Autumn Song) Andante doloroso e molto cantabile

'November' 삼두마차(On the Troika) Allegro moderato

'December' 크리스마스(Christmas) Tempo di Valse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 피아노

Denis Matsuev, a virtuoso in the grandest of Russian pianistic tradition, gave this remarkable recital

Live from the Roy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lFgkZjFp8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