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가슴이 있다는 것은 : 호아저씨와 은수 두 분을 추모하며

들꽃 호아저씨 2024. 10. 20. 06:00

 

 

 

 

은수야

하루마음

 

음…

너를 부르는 것이 이렇게 아프고 힘든, 숨이 턱 막혀 심호흡이 필요한 것이라는 걸 나는 왜 떠나고서야 알았을까.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누군가의 아픔을 먼지 한 톨만큼은 알아챘을까. 그랬더라면 밀알만큼이라도 따뜻함을 전할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작지만 따뜻함으로 누군가의 텅 빈 가슴을 데울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후회는

우리가 자유롭게 한 행동인데도 그것을 떠올리면 슬퍼지는 것, 그것이 후회라고 해. 슬픔은 시시때때로 몰려와 나를 짓누르기도 하고, 어느 시간에 나를 묶어 침잠하게도 해. 9월이 되자 10월이 올까 두려웠어. 때로 가슴 벌렁거림과 탄식으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는데, 그리 산다고, 어느 시간까지 그리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야. 수시로 찾아오는 슬픔에 아주 종종 막대 사탕을 빼어 무는 것을 보면 말이야. 달달한 사탕을 입에 물면 입안 가득 퍼지는 단맛에 잠시라도 슬픔이 사라지는 것 같았거든.

 

은수야

사람은 무엇에서건 배운다고 하는구나. 문학을 통해서도 배우고, 시 한 수 마음에 들이면서도 배우고 말이야. 그러나 인간은 그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고 해. 왜 꼭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고서야 그 시간과 상황을 알아챌까. 왜 꼭 피 흘리는 아픔을 겪어야만 가슴 깊이 깨달을까. 이렇게라도 알아채고 배우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시인은 “가슴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럽다”라고 했어. 호아저씨께서 은수와 은수 엄마를 떠나보내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삶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었던 것은 가슴이 있었기 때문이었겠지. 가슴의 서랍들을 다 빼버리고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살 수가 없었겠지. 호아저씨의 고통을 좀 더 명민하고 예민하게 알아차리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 후회스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이 또한 시간의 지층에 따라 희미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지층이 되어 쌓이기도 하겠지. 내 가슴이 고통스럽다고 10월의 어느 시간이 기억의 주머니에서 망각의 주머니로 옮겨졌으면 하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지. 적어도 내 가슴의 서랍들을 빼버리고 텅 빈 가슴으로는 사는 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 어느 순간에 봉인되어 꼼짝하지 못하더라도 가슴이 있어 고통스러운 것이니 가슴이 있는 이, 가슴이 있어 고통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이로 살아야겠지.

 

 

호아저씨,

 

흠…

이름을 부르는 일은 특별함이라고 그러셨지요. 먹먹하고, 아프고, 하염없이 슬프지만 호아저씨를 부릅니다. 은수를 부르고 은수 어머니 신선희 님을 부릅니다. 살고자 가셨으니 그곳에서는 꼭 사셔야 합니다. 죽음도 삶이라고 하셨으니 부디, 살아냄이 아닌 절로 살아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생과 사가 있어 뻐근한, 뻐근해서 아픈, 아파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시월입니다. 호아저씨께서 온 마음을 담아 부르셨듯 느낌표 네 개 붙여 호아저씨를 부릅니다.

 

호아저씨!!!!

 

 

2024.10.20 호아저씨 1주기와 은수 6주기에 두 분을 추모하며 하루마음이

 

 

 

https://www.youtube.com/watch?v=4l5Ef8hMXEg&t=373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