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 밀턴이 지은 대서사시 '失樂園'이 있다. 이를 한글로 '실락원'이라 쓰는 이들이 많다. 그런 제목으로 책이 출간되고,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樂은 분명 '락'자가 맞다. 또 앞에 한자 '失'이 있으니, '실락원'으로 쓰는 것이 옳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失樂園'의 뜻이 뭔가? "낙원을 잃었다"는 것이다.
즉 失樂園은 '失+樂園'으로 이뤄진 말이다. 따라서 樂園(락원)의 우리말 적기인 '낙원'으로 쓰고, 그 앞에 '실'을 더해 '실낙원'으로 적어야 바른 표기가 된다. 만약 '실락원'으로 쓰게 된다면 그 의미는 "즐거움을 잃은 동산"쯤이 된다.
'실낙원'과 비슷한 구조의 낱말로 흔히 틀리는 것에는 '連陸橋'도 있다. '連陸橋'의 '陸'은 땅을 가리키는 '뭍 륙'자다. 하지만 육지(陸地)나 육교(陸橋)처럼 낱말의 첫소리로 올 때는 두음법칙에 따라 '육'으로 써야 한다. 따라서 '連+陸橋'의 구조라면 '연육교'가 바른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라. '連陸橋'의 의미가 뭔가? "연결된 육교"인가? "땅과 연결된 다리"인가?
"연결된 육교"를 뜻하는 말이라면 '連+陸橋'의 구조로, '연육교'로 쓰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섬과 육지를 연결해 주는, 즉 "땅과 연결된 다리"라는 뜻의 말이라면 '連陸+橋'의 구조이므로 '연륙교'라고 적어야 한다.
답은 뻔하다. '연육교'가 아니라 '연륙교'다.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시작할 때면 ‘해 년(年)’이 붙는 단어들을 자주 쓰게 되는데 이것들을 적을 때 혼란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다음 사례들을 보자.
ㄱ. 년간 수입이 500만 원 이상이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
ㄴ. 이 주택마련저축은 년 6%의 금리가 적용됩니다.
ㄷ. 회계년도를 꼭 1월에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ㄹ. 본인의 생연월일을 입력하시면 운세가 출력됩니다.
‘녀, 뇨, 뉴, 니’로 시작되는 한자음은 단어 첫머리에 올 때는 ‘여, 요, 유, 이’로 적어야 한다. 두음법칙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년’이 첫머리에 위치한 ㄱ의 ‘년간’이나 ㄴ의 ‘년’은 ‘연간’과 ‘연’으로 적는 게 옳다. ㄷ의 ‘회계년도’는 ‘회계연도’로 적어야 한다. 이 단어는 ‘회계 연도’처럼 띄어 쓰는 게 원칙이지만 붙여 쓰는 것도 허용된다. 이때는 ‘연도’를 별도 단어로 취급하므로 ‘년’이 첫머리에 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ㄹ의 ‘생연월일’은 ‘생년월일’이 옳다. ‘생년, 생월, 생일’을 합쳐서 줄인 말이기 때문이다.
겨울답지 않게 비교적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한랭전선이 통과하면서 며칠째 영하의 추위를 보이고 있다. 한랭전선(寒冷前線)이란 찬 공기가 더운 공기를 밀어내고 그 아래를 파고들 때 생기는 경계면을 일컫는다. ‘한랭전선’을 ‘한냉전선’이라 표기하면 어떻게 될까?
‘한냉전선’이라 적으면 틀린 말이 된다. 일부 모음 앞에서 단어 첫머리의 ‘ㄹ’은 두음법칙 적용으로 ‘ㄴ’으로 적지만 어두가 아닌 경우엔 본래 음대로 표기하기 때문이다. 즉 냉각(冷却)·냉난방(冷暖房)처럼 ‘차가울 랭(冷)’이 첫머리에 올 때는 ‘냉’이라 적는다. 하지만 한랭전선·고랭지(高冷地)·급랭(急冷) 등과 같이 어두가 아니면 본음대로 ‘랭’이라 표기해야 한다.
‘랭(冷)’자가 들어간 것뿐 아니라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대부분 단어가 마찬가지다. 여자(女子)·연도(年度)·노인(老人) 등은 두음법칙에 따라 ‘계집 녀(女)’ ‘해 년(年)’ ‘늙을 로(老)’를 어두에서 각각 ‘여’ ‘연’ ‘노’로 적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부녀자(婦女子)·연년생(年年生)·촌로(村老) 등처럼 원래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
출처 우리말 배움터
[우리말 바루기] ‘보냉병’일까 ‘보랭병’일까?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회용품을 줄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일회용 플라스틱이나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커피 전문점에 보온병을 들고 오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한다. 보온병에는 냉커피를 담기도 하는 등 찬 것을 담아 보관하는 용도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보냉병’이라 부르기도 한다.
‘보냉병’ 대신 ‘보랭병’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냉’이냐 ‘랭’이냐의 차이인데 여기에서 두음법칙을 떠올렸다면 우리말 바루기의 애독자라 할 만하다.
이와 관련해 한글 맞춤법에는 본음이 ‘라, 래, 로, 뢰, 루, 르’인 한자가 단어 첫머리에 올 적에는 두음법칙에 따라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는다고 돼 있다. 그러나 단어의 첫머리가 아닌 경우에는 본음을 살려 적어야 한다.
‘保冷’은 ‘보호할 보(保)’ 자와 ‘찰 랭(冷)’ 자로 이뤄진 낱말이다. ‘冷’이 단어 첫머리가 아니라 ‘保’ 다음에 오기 때문에 본음을 살려 ‘랭’으로 읽어야 한다. 따라서 ‘보냉병’이 아닌 ‘보랭병’이 바른 표현이다.
저위도에 위치하며 표고가 600m 이상으로 높고 차가운 곳을 의미하는 ‘高冷地’를 읽어 보자. 이 역시 단어 첫머리가 아닌 중간에 ‘冷’이 오므로 ‘고냉지’가 아니라 ‘고랭지’라 표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冷冷하다’는 어떻게 써야 할까. 단어 첫머리에 오는 ‘冷’은 두음법칙을 적용해 ‘냉’으로, 이어서 오는 ‘冷’은 본음을 살려 ‘랭’으로 적으면 된다. 즉 ‘냉냉하다’나 ‘랭랭하다’가 아닌 ‘냉랭하다’로 표기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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