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제수씨 1주기에 부쳐

들꽃 호아저씨 2022. 4. 1. 17:24

 

 

 

 

신선희(1965년 2월 10일(음력)-2021년 4월 1일)

 

 

 

제수씨 1주기에 부쳐

 

 

오늘이 제수씨 1주기입니다.

스무날 전이 제수씨 생일이었는데, 오늘이 기일이라니요.

생과 사의 거리가 이다지도 짧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얼마전 제수씨도 아는 후배를 만났습니다.

제수씨 소식을 전했더니 그 자리에서 왈칵, 눈물을 쏟더군요.

저도 슬픔이 복받쳤는데 눈물이 되어 흐르지는 않았습니다.

저보다 제수씨가 더 잘 알 겁니다.

이 세상에는 흐르는 눈물만이 아니라 마른 눈물도 있다는 것을요.

 

제수씨는 힘이 참 셌습니다.

무거운 팔레트를 같이 들어올려 쌓은 적이 있는데,

제수씨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들어올리는 걸 보고

속으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 겁니다. 그렇게 강인했던 분이라

은수가 없는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잘 견뎌내시리라 덜컥 믿어버렸던 거죠.

아니, 애써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 겁니다.

 

저는 왜 못 보았던 걸까요.

저랑 함께 들었기 때문에 그 무거운 팔레트를 가볍게 들었다는 것을요.

저는 왜 못 보았던 걸까요.

그 마른 눈물 속에 아픔과 슬픔이 흘러넘치고 있다는 것을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깊은 눈이 제게 있었더라면

한번 더 만나고,

한번 더 웃고,

한번 더 손을 잡아주고,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고통을 나누어 졌더라면

팔레트와도 같은 그 무거운 삶을 함께 들어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후회로 현실을 흘려보내지는 않으렵니다.

아직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삶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음악으로, 시로, 글로, 꽃으로, 촛불로,

끊임없이 못다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한

우리는 여전히 현재진행의 삶을 삽니다.

오늘 사연을 두고 돌아서면

내일 또 다른 사연이 우릴 찾아 옵니다.

 

그러니, 제수씨여.

외로워 마소서.

슬퍼 마소서.

그곳에서나마 내내

평안하소서.

 

2022.4.1

 

 

 

https://www.youtube.com/watch?v=4l5Ef8hMX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