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巡禮)의 서(書) / 오규원
1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을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偏愛)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사람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2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무엇인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서
호올로 나부끼는 옷자락은
무엇인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껴안고
나를 오오래 어두운 그림자로 길가에 세워 두는 것은
그리고 무엇인가 단 한마디의 말로
나를 영원히 여기에서 떨게 하는 것은
멈추면서 그리고 나아가면서
나는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오규원 시선』)(오규원 지음, 이연승 엮음, 지만지, 2012)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소나타 4번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 4 in A minor, Op. 23
Ⅰ. Presto
Ⅱ. Andante scherzoso, più allegretto
Ⅲ. Allegro molto
아우구스틴 하델리히Augustin Hadelich 바이올린
찰스 오웬Charles Owen 피아노
Recorded Live in concert, May 9 2017 - Studio 2 des Bayerischen Rundfunks
https://www.youtube.com/watch?v=h79GEJY7N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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