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베토벤 바이올린소나타 4번 :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 순례(巡禮)의 서(書) : 오규원​

들꽃 호아저씨 2023. 3. 9. 20:16

 

 

순례(巡禮)의 서(書) / 오규원​

 

1

 

종일

바람에 귀를 갈고 있는 풀잎.

길은 늘 두려운 이마를 열고

우리들을 멈춘 자리에

다시 멈추게 한다.

 

막막하고 어지럽지만 그러나

고개를 넘으면

전신이 우는 들,

그 들이 기르는 한 사내의

편애(偏愛)와 죽음을 지나

 

먼 길의 귀 속으로 한 사람씩

떨며 들어가는

영원히 집이 없을 사람들.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2

 

바람이 분다, 살아 봐야겠다.

 

무엇인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은

저기 저 길을 몰고 오는 바람 속에서

호올로 나부끼는 옷자락은

 

무엇인가 나에게 다가와 나를 껴안고

나를 오오래 어두운 그림자로 길가에 세워 두는 것은

그리고 무엇인가 단 한마디의 말로

나를 영원히 여기에서 떨게 하는 것은

 

멈추면서 그리고 나아가면서

나는

저 무엇인가를 사랑하면서.

​-『오규원 시선』)(오규원 지음, 이연승 엮음, 지만지, 2012)​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소나타 4번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 4 in A minor, Op. 23

Ⅰ. Presto

Ⅱ. Andante scherzoso, più allegretto

Ⅲ. Allegro molto

 

아우구스틴 하델리히Augustin Hadelich 바이올린

찰스 오웬Charles Owen 피아노

Recorded Live in concert, May 9 2017 - Studio 2 des Bayerischen Rundfunks

https://www.youtube.com/watch?v=h79GEJY7N0o

아우구스틴 하델리히Augustin Hadelich 바이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