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야
네가 떠나고 다섯 번째 가을이 왔어. 은수는 어떤 계절을 좋아했을까? 은수가 태어난 봄이었을까? 나는 가을을 참 좋아하는데 어느 해부터 10월은 탄생이 있어 축복이기도 하고, 떠남이 있으니 아프고 그립기도 한 달이 되었지. 인디언들은 10월을 “양식을 갈무리하는 달, 잎이 떨어지는 달, 큰 바람의 달”들로 불렀다고 하는구나. 자신들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고, 자연에서 삶을 성찰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이름이지 않을까 싶어. 사랑하는 이들의 생과 사가 모두 들어 있는 나의 10월을, 인디언식으로 이름 짓는다면 “조금은 뻐근하면서 가슴에 꽉 들어찬 달”이라고 해야 할까.
살다 보면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태어나곤 하지. 순환이라고 해야 할까, 반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사라진다고 모두 잊는 게 아니더라고. 인간은 부재 속에서도 존재한다는 말처럼 곁에 존재하지 않는 그 순간부터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추억하고 더 많이 그리워하지. 너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이 되살아나고 빛 고운 추억이 남아 있지. 10월은 그렇게 또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고와서 아픈 달이 되기도 해
너를 기억하마!
은수도 알겠지만 호아저씨(아빠)는 10월만 되면 더 많이 슬프고 더 많이 아프단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 참척의 고통을 표현하기란 그 어떤 말로도 충분하지 않지.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그 아픈 슬픔의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겠지. 호아저씨가 듣는 모든 음악이 진혼곡인것처럼 매일이 은수를 추모하는 몸짓이고 언어(정신)이지. 구도자의 삶이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향해 소리 없는 아우성, 몸부림을 치시지. 은수를 기억해 달라고. 두 번 다시 은수처럼 학교폭력으로 생을 마감하는 아이는 없어야 한다고 말이야.
은수를 기억해 주세요!
지난번 우연히 케테 콜비츠 책을 만든다며 펀딩 하는 출판사를 보았어. 네 생각이 났단다. 전시회도 다녀오고 했으니 은수도 잘 아는 케테 콜비츠. 네게 선물을 하고 싶어 두 권을 펀딩 했고, 마침 최근에 책이 왔어. 책이 자그마니 내 마음에는 드는데 은수 마음에도 들었으면 좋겠구나.
비록 책으로 만났지만 케테 콜비츠의 삶의 태도가 오래 남는구나. 케테 콜비츠는 “언제나 삶과 예술에서 권리를 박탈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섰으며, 수탈당하는 사람들의 진보적 투쟁에 동참”했다고 해. 늘 구체적인 사회 현실로부터 자신의 재능이 유리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하는구나. 은수는 사람들이 잡초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뽑아버리는 풀에 대해 마음 써여했지. 그런 은수라면 케테 콜비츠처럼 고통받는 사람들, 사회 약자들을 외면하지 않았을 것 같아.
은수야
우리가 살면서 케테 콜비츠와 같은 삶의 태도로 머리로 생각한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발로 실천할 수 있다면, 타인의 슬픔을 공부할 수 있는 이들이 된다면, 우산이 없는 이에게 우산을 씌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을 수 있다면 타인의 고통, 호아저씨의 슬픔, 은수와 같이 학폭으로 힘들어하고 생을 마감하는 친구들을 외면하진 않겠지.
외면은 무관심에서 비롯될 텐데 관심과 무관심은 한 끗 차이지. 한 끗은 비단을 한 번 접은 만큼의 아주 작은 길이잖아. 이 작은 관심이 어느 방향으로 서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을 외롭고 더 아프게 하기도 하고 살만한 세상이구나 따듯함을 느끼게도 하지. 오늘 나는 어느 쪽의 한 끗에 서야 하는지 공부하련다. 자연에서 성찰하고 배우는 겸손한 삶의 태도를 가진 인디언이나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케테 콜비츠의 삶의 태도를 들여다보면서 따듯함의 한 끗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의 생과 사가 모두 모여 있어 조금은 뻐근하면서 가슴에 꽉 들어찬 10월에.
은수를 떠올리며
2023년 10월 20일 하루마음이
https://meloman.ru/concert/kzch-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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