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편지

베토벤 바이올린협주곡 : 길 샤함,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 - 맵지 않은 사람이기를

들꽃 호아저씨 2024. 1. 13. 23:00

 
 

맵지 않은 사람이기를 / 하루마음

 
 

생선가게를 지나다 물 좋은 고등어를 만났다. 서민 생선이라는 고등어 한 마리는 만 원이 훌쩍 넘었다. 주인은 국내산 생물이라며 강조를 했다. 통통하고 큼지막한 고등어는 신선해보였다. 요리를 잘 하지 못해도 맛난 조림이 될 것 같았다.

고등어 무 조림을 했다. 바닥이 넓은 냄비에 두툼하게 썬 무를 두엇 겹 깐다. 먼저 물을 붓고 된장을 조금 푼 후 무가 익을 정도로 끓인다. 익을 동안 양념장을 준비한다. 무가 투명해질 정도로 익으면 그 위에 고등어를 올리고 양념장을 끼얹어 뭉근한 불에 조린다. 고등어 무 조림에서 주인공은 고등어일까 무일까. 그게 뭣이 그리 중하냐고 묻는다면, 뭐 중하지는 않지만 느닷없이 궁금해졌다는 거지. 누군가에게는 고등어가 또 어떤 이에게는 무가 젓가락질을 더 자주 하게 할 테니.

그이는 고등어 무 조림을 좋아한다. 고등어보다는 무를 좋아한다. 그러니 고등어보다는 무를 많이 넣고 뭉근한 불에 오래 조린다. 무에 양념이 골고루 베고 푹 익어야 하니까. 간간하면서 알큰한 양념이 밴 푹 익은 무는 공깃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하게 한다. 그러니 그이에게 고등어 무 조림은 무 고등어조림이라 해야 할까. 그이는 푹 익은 무에서 어떤 맛을 느낄까.

어떤 음식은 사람을 떠오르게 한다. 고등어 무 조림, 아니 무 고등어조림은 그이를 생각나게 하고, 칼국수는 엄마를 소환한다. 엄마가 칼국수를 좋아했는지는 모른다. 1주일에 서너 번 홍두깨로 칼국수를 밀었던 엄마의 모습이 겹칠 뿐. 그래서 칼국수는 엄마다. 그 칼국수를 즐겨드셨던 분은 아버지다. 그래서 칼국수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음식으로 기억될까.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내가 떠오를까. 아니 어떤 요리를 먹으며 내가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맵지 않은 사람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알싸한 맛이 아니면 좋겠다. 엄마의 집장처럼 집장 본연의 맛을 간직한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알랭드 보통은 『사유 식탁』에서 관계에서 음식의 중요성을 말한다. 음식은 심리적인 영역을 조정하는 수단이기에 음식을 먹으며 중요한 대화를 시작하거나 어려운 일을 겪었던 자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음식을 먹으면 특정인이 떠오르는 것은 말의 교감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마음 속 감정적인 부분과 맞물리기 때문일까.


푹 익은 무를 한 입 베어 문다.
칼칼하면서 부드럽다.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그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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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바이올린협주곡Konzert für Violine und Orchester in D-Dur, Op. 61
I. Allegro ma non troppo
II. Larghetto
III. Rondo - Allegro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imitri Chostakovitch(1906-1975)
교향곡15번Symphonie Nr. 15 A-Dur, op. 141
I. Allegretto
II. Adagio–Largo
III. Allegretto
IV. Adagio–Allegretto
 
스베틀라노프심포니오케스트라Svetlanov Symphony Orchestra
길 샤함Gil Shaham 바이올린
블라디미르 유로프스키Vladimir Jurowski
January 21, 2022. Tchaikovsky Hall, Moscow, Russia
https://meloman.ru/concert/kzch-2022-01-21/

 

Госоркестр России имени Е. Ф. Светланова, Владимир Юровский, Гил Шаха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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