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권 ?나도 우리말 달인?에서는 우리말 토씨 ‘의’를 다루면서 나 같은 사람을 가리켜 ‘의’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아주 작정을 하고 썼다. 그러면서 ‘와의’ ‘에의’ ‘에로의’ ‘에게로의’……, 마음 놓고 쓰라고 한다. 옛 문헌을 들이대는가 하면 어느 대학의 교수가 전혀 문제 삼을 까닭이 없다고 한 주장까지 들이대면서 나 같은 사람을 겁준다. ‘나의 살던 고향’ ‘과학에의 초대’ ‘새떼에게로의 망명’……. 다 써도 된다고 주장한다. 사전도 거든다. ‘나의 살던 고향’에서 ‘의’가 주격조사 구실도 한다는 풀이를 해 놓았다. ‘나의 읽던 책’ ‘나의 먹던 밥’……. 이게 말인가, 글이 되는가.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일제 식민지 시대에 번역한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마태복음 6:3 그 뒤(1977년) 『공동번역성서』에서 ‘오른손이’라고 겨우 바로 잡았는데 우리 잘난 전문가들과 사전들이 다시 다 망쳐 놓았다. 그 죄 가볍지 않다. 한번 따져 보자. 우리말에서는 토씨 ‘의’를 잘 안 쓴다. 말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여러 가지 까닭이 있지만 토씨 ‘의’는 겹홀소리여서 발음하기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일본말의 토씨 ‘の(노)’의 영향을 받은,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유학한 지식인들이 마구 끌어다 쓴 결과로 우리말은 아주 거덜이 났다. 어떤 사람이 ‘의’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든 게거품을 물든 상관없지. 문제는 토씨 ‘의’를 잘못 쓰면, 체계가 잘 선 우리말과 글의 흐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문장 구조를 아주 결딴낸다는 데 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니 반갑고 할 이야기도 많다. 찻집에 가서는, 아무도 “여기요, 두 잔의 커피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여기요, 커피 두 잔 주세요.” 이렇게 말하지. 책방에 가서 “이 한 권의 책 주세요.” 하는 사람 없다. “이 책 한 권 주세요.” 하지. 시든 산문이든 소설이든 논문이든 어떻게 된 게 다 ‘두 잔의 커피’다. 책도 ‘두 권의 책’이고 일할 때 쓰는 연장도 ‘두 자루의 삽’이다. 말이 되게 글을 쓴다는 게 뭐 그리 어려운가. ‘커피 두 잔’이요 ‘책 두 권’이고 ‘삽 두 자루’다. 그런데 왜 전문가들은 모두 이 간단한 이치를 없이 보나. 삶에서 떠난 말을 하고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야 뭔가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는, 아주 못된 버릇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몰라서 못 고치기도 하지만 거의 다 알면서도 안 고친다. 왜? 자기는 전문가니까. 비비 꽈서 그럴 듯하게 말을 하고 글을 써야 뭔가 있어 보이고, 그렇게 말을 하고 글을 써서 사람들을 몽롱하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남 탓할 일 아니다. 토씨 ‘의’를 보면 나 같은 사람 경기를 일으킨다고 하니까 좀 더 따져 보자.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로 쓰는 우리말 ‘의’와 일본어 ‘の’를 견주어 보자. 아래 보기로 든 일본어 문장은 일본의 한 소학교 학생이 쓴 글이다. 일본의 어느 교육 평론가는 여기 나오는 ‘の’를 한 자도 없애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 글을 그대로 우리말로 직역을 하면 이렇게 된다.
きのぅ私は私の家のぅらの私の家の細の私の家の桃をとつてたべまた.
어제 나는 나의 집의 뒤의 나의 집의 밭의 나의 집의 복숭아를 따먹었습니다.
이건 도무지 우리말이 아니다. 우리말로 해 보자.
나는 어제 우리 집 뒤에 있는 우리 밭 복숭아를 따먹었습니다.
같은 뜻의 내용을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쓰더라도 이렇게 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써야 말이 되고 글이 된다. 놀라운 일이잖은가. 지금 우리말에서는 다른 어떤 바깥말의 오염보다도 토씨 ‘의’를 함부로 쓰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번역한 글뿐 아니라 자유롭게 쓰는 모든 글에서, 글뿐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말까지 지식인들의 깨달음 없는 버릇이 널리 퍼져서, 바야흐로 우리말의 크나큰 수난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우리말에서 그처럼 절제되어 우리말을 살아 움직이는 삶의 말로 만들어 놓았던 토씨 ‘의’가 이제는 아무데나 마구 붙게 되고, 다른 토씨들에도 덕지덕지 꼴사납게 덧붙어서 우리말이 아주 처참하게 변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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