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수(1999년 3월 3일~2018년 10월 20일)
은수 스물두번째, 아니 두번째 생일에
은수야,
인간의 육신은 사라져도 정신은 영원히 남을 수 있다고 스피노자는 말했지.
너로 인해 그 말이 진리임을 사무치게 느낀단다.
너는 이곳에 없지만 있다.
너는 엄마 아빠를 위시해서 너를 아끼고 염려하는 사람들과 여기 이렇게 살고 있다.
그래, 그렇게 여기 남은 우리는 또다른 생을 시작했어.
오늘은 너를 보내고 맞는
'또다른-생'의 두번째 생일이다.
아빠는 생일을 두 밤 앞두고
이 지상의 "삶에 지친 그대에게" 고단함을 위로하는 음악을 선물했다.
지금,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26분 동안 흐르는 음악은 슬프고 기쁘다. 기쁨으로 피아노의 선율이 힘차게 솟아오르면 어느새 더블베이스가 낮고 묵직한 소리를 내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피아노와 더블베이스는 그렇게 서로 공명하면서 삶을 연주한다.
낮고 깊고, 기쁘고 슬프고, 밀고 당기고, 밝고 어둡고, 헤어지고 다시 만난다.
위대한 예술은 저기세상과 여기세상을 이어준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예술을 통해 무한으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다. 예술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우리를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안내한다. 그 무한한 인과 연쇄의 전체 속에서 우리는 위안과 힘과 용기를 얻는다. 영원성과 구원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은수야!
우리 서로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꾸나.
우리는 영원성 속에서 언제나 항상 이어져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네 얘기도 들려주렴.
내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상관없어.
언제든 오렴.
뛰어와도 좋고 사뿐사뿐 와도 좋아.
오고 싶을 때, 오고 싶은 방식으로 와서 이야기해주렴.
내가 전령사가 되어 네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해줄께.
아빠가 네 생일날 선물한
지상의 이 아름다운 음악이
너에게도 틀림없이 가닿을 거라 믿으면서...
너의 두번째 생일을 온맘으로 축하해.
추신 : 큰아빠 생선도 슈베르트의 이 음악으로 할께. 묻어가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너무 압도적이어서 다른 선물은 명함 내밀기가 힘드네..ㅎ
2020년 3월 1일 4시 22분
큰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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