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수(1999년 3월 3일~2018년 10월 20일)
은수야. 안녕
먼저 스물두 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블로그를 통해 아빠와 이웃이 된 ‘겨울다솜’이라고 해
사진에는 너의 어릴 때 모습만 있어서
아직 애기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사실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아가란다^^)
은수 덕분에 아빠를 알게 된 건지
아빠 덕분에 너를 알게 된 건지 모르겠다.
어떤 끌림과 인연으로 너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이 시간이 너무 먹먹해.
우리말 공부와 음악을 올리시는 아빠랑
간단한 소통을 하면서 은수 얘기를 전혀 몰랐어.
성미산 대안학교라는 것도,
집단 따돌림이라는 것도...
아빠가 하루 종일 잠자는 서너 시간을 제외하고 듣는 음악도 아는 게 없어.
클래식을 모르니까 왜 들으시는지 몰랐어.
너를 알고 나서 다시 듣는 아빠의 음악들은 너무 사무치게 그리워서 들을 수밖에 없는 , 죽어서야 만날 수 있는 너를 그곳에 먼저 보내놓고
가슴 아픈 아빠의 비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너를 기다리며 속으로 올라오는 분노를 참아내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몸부림 같아 몹시 안쓰러웠단다.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차별 없는 세상은 아직 힘든 세상인 것 같아.
그런 세상에서 견뎌내는 것도 고통스러웠을 텐데 부딪혀 싸워내느라 어린 너의 가슴이 병들었을 오랜 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사실 상상하는 것으로는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야.
돈도 명예도 기회도 모두가 골고루 나눌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나도 늦게 알았거든.
어린 네가 감당하기에 얼마나 무겁고 힘든 시간이었을까.
아직 너를 보내지 못하고 남은 아빠의 고통은 더더 상상하기 어렵다.
나에게도 딸이 하나 있어.
이제 중3이 되거든.
또래 친구들보다 멋을 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더니 요즘은 외출할 때 화장을 살짝 하더라.
가끔씩 대학생이 되는 딸을.
이쁜 연애하는 딸과
아가를 키우며 엄마가 되는 딸의 모습을 떠올려보곤 해.
존재만으로도 희망이 되고
그저 숨 쉬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고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구나.
부모님 역시 사랑하는 딸 은수와 함께
나누고 간직하고 싶은 꿈과 추억들이 얼마나 많으실까.
못해 준 일들이 사무치게 후회스럽고 미안하실까.
하지만 은수는 이미 다 받았을 거라 믿어.
충분히 사랑받는 아이였을 테니까.
너는 아마 지금쯤 한창 물오른 나무처럼
젊음 자체로, 너의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고 있겠지.
은수야, 네가 떠난 자리에
더 이상 자라는 모습을 가둔 채
늘 어린 네 사진을 보는 아빠의 마음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도 같아
아빠가 많이 힘들지 않게 은수가 힘을 주면 좋겠다 그치?
자식을 먼저 보내고 발 뻗고 숨 쉴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가슴팍을 치며
억울해서 아까워서 보고 싶어서
울어도 부족한 마음일 거야.
너를 보내고 두 번째 맞는 생일이라 더욱 사무치는 그리움에 홀로 견뎌야 하는 아빠가 걱정이 된다.
은수가 행복한 모습으로 꿈속에라도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밤이면 좋겠다.
모두가 힘들어 하는 시기지만 은수의 사랑이 아빠의 가슴에 따스한 온기로 스며드는 하루였음 좋겠어.
오늘 하루 부모님과 쌓인 이야기 많이 하고 눈물도 원망도 하나씩 덜어내 보자.
그리고 조금만 아주 조금씩만 가벼워지자.
올해는 3월이 새롭지 않은 기분이란다.
신학기 입학이 있는 모든 것의 출발이던 3월.
우리도 잠시 멈춰있거든.
내년에는 화사한 봄인사로 만나자.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아빠의 사랑만큼~^^
너의 생일 너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겨울다솜.
PS) 너를 더 많이 알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너의 부모님과 가족과 함께 너를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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