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비발디 ‘사계’ : 루카 술릭, 차이콥스키 ‘사계’ : 데니스 마추예프 - 은수 3주기에 부쳐

들꽃 호아저씨 2021. 10. 17. 16:17

 

 

 

 

은수야

하루 스물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

하지만 누구에게는 이 시간이 빠르게 흘러 부족한 느낌이 들 때가 있고,

어떤 이는 더디게 흐르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해.

 

은수가 떠난 3년 전 10월 20일.

아버지 시간은 그날 이후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멈췄지.

아버지한테 은수가 없는 세상은 삶이 아니야.

참척을 겪은 박완서 작가는 시간을 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더라.

세월이 흐르면서 아픔이 조금씩 무디어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을 꾸려나가는 작가 자신이 낯설고 싫기도 했다는구나.

그러면서 이게 삶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지.

그렇지, 그게 삶이야.

하지만 아버지한테는 작가가 말하는 신은 오지 않았어.

시간이 흐를수록 은수 냄새, 은수와 함께했던 날들이 더 또렷해지거든.

 

은수야

자크 데리다는 진정한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해.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가 아니란 말이지.

용서란 개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거든.

단, 용서는 사죄가 전제될 때 성립하지.

아버지가 차마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자는 것은

첫째는 가해자의 사죄야.

그리고 나머지 가해자들도 1/n이 아닌 일대일의 사죄가 필요하지.

하지만 용서라는 개념은 개념 너머 삶의 문제이기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자는 거야.

 

은수야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별까지 가는 길’을 이야기하지.

타라스 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잖아.

우리가 별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어.

별에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갈 수 있거든.

비록 은수와 엄마는 별까지 기차를 타고 갔지만 아버지는 두 발로 걸어서 가려고 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건, 내 비참한 운명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천명대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거야.

 

​은수야

아버지가 두 발로 별까지 걸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어.

세월호 아이들과 은수, 엄마 신선희의 존엄함을 증언해야 할 권리가 있지.

아버지는 증인으로 나서서 증거하고 증언하기 위해 그 권리를 충분히 누려야 해.

세월호, 은수, 은수 엄마의 이야기가 세월이 흘러 잊힐 수도 있지만, 

아니 어쩌면 이미 잊히고 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누군가는 망각하지 않고 기억해야 하고, 증인으로서 증언해야 해.

그래야만 또 다른 세월호, 또 다른 유은수와 은수 엄마를 만들지 않아.

이것이 아버지가 별까지 걸어가야 할 명백한 이유야.

은수야

인연이란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스쳐 그 바위가 눈꽃처럼 하얀 가루가 될 즈음

그제야 한 번 찾아오는 거라는구나.

이처럼 사람 안에 사람을 잉태한다는 것은 긴 기다림과 천 년에나 한 번 마주칠 귀함이 있지.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수천수만 번의 애달프고 쓰라린 잠자리 날갯짓이 숨 쉬고 있는 것처럼

은수와 아버지도 그렇지.

 

은수야

아버지가 걸어서 은수 별에 가는 날까지

한겨울 찬 서리 바람에도 마음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마.

은수와 엄마를 그리워하는 작은 돌 하나 마음에 품고.

 

시리도록 눈부신 가을 어느 날 은수 3주기에 부쳐

2021. 10. 17. 15:30

 

 

 

 

유은수(1999년 3월 3일 - 2018년 10월 20일)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1678-1741) ‘사계’Four Seasons (Quattro Stagioni)

루카 술릭Luka Šulić(첼로 편곡) playing his own arrangement for cello of The Four Seasons by Antonio Vivaldi.

Spring (Allegro - Largo - Allegro)

​ Summer (Allegro non molto - Adagio Presto - Presto)

Autumn (Allegro - Adagio - Allegro)

​ Winter (Allegro - Largo - Allegro)

트리에스테의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극장 재단 오케스트라Orchestra della Fondazione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di Trieste

루카 술릭Luka Šulić - 트리에스테의 "주세페 베르디"오페라 극장 라이브Live in Trieste, Teatro Lirico "Giuseppe Verdi"

https://www.youtube.com/watch?v=mTEFOa0hwzk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93) ‘사계’The Seasons, Op. 37a (Royal Concertgebouw, 2015)

'January' 불가에서(By the Hearth) Moderato semplice, ma espressivo

'February' 사육제(The Carnival) Allegro giusto

'March' 종달새의 노래(Song of the Lark) Andantino espressivo

'April' 눈송이(Snowdrop) Allegretto con moto e un poco

'May' 백야(White Nights) Andantion

'June' 뱃노래(Barcarolle) Andante cantabile

'July' 수확의 노래(Reaper's Song) Allegro moderato con moto

'August' 추수(The Harvest) Allegro vivace

'September' 사냥(The Hunt) Allegro non troppo

'October' 가을의 노래(Autumn Song) Andante doloroso e molto cantabile

'November' 삼두마차(On the Troika) Allegro moderato

'December' 크리스마스(Christmas) Tempo di Valse

데니스 마추예프Denis Matsuev 피아노

Denis Matsuev, a virtuoso in the grandest of Russian pianistic tradition, gave this remarkable recital

Live from the Royal Concertgebouw, Amsterdam,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lFgkZjFp8q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