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열 : 그리고리 소콜로프 - 흐르다 : 나희덕

들꽃 호아저씨 2022. 5. 14. 02:50

 

 

Grigory Sokolov in recital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1856)

크라이슬레리아나'Kreisleriana, Op. 16

1. Äußerst bewegt (Very animated)

2. Sehr innig und nicht zu rasch (Introspective and not too fast)

3. Sehr aufgeregt (Very agitated)

4. Sehr langsam (Very slowly)

5. Sehr lebhaft (Very lively)

6. Sehr langsam (Very slowly)

7. Sehr rasch (Very fast)

8. Schnell und spielend (Fast and playful)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1873-1943)

전주곡 열Preludes, Op. 23

No. 1 in F-sharp minor: Largo

No. 2 in B-flat major: Maestoso

No. 3 in D minor: Tempo di menuetto

No. 4 in D major: Andante cantabile

No. 5 in G minor: Alla marcia

No. 6 in E-flat major: Andante

No. 7 in C minor: Allegro

No. 8 in A-flat major: Allegro vivace

No. 9 in E-flat minor: Presto

No. 10 in G-flat major: Largo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피아노

Venue: Human Rights Chamber at Palais des Nations. United Nations (Geneva, Switzerland) Broadcast date:Thursday, December 23, 2021 4:00 AM(KST)

https://www.youtube.com/watch?v=CvuaD7tUQek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피아노

 

 

흐르다 / 나희덕

좋아하는 동사를 묻자 그는

흐르다, 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 동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 가 흘러내리다, 의 동의어라는 것을

 

그저 수평적 움직임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눈물의 수직성을

 

눈에서 입술로, 상류에서 하류로, 젊음에서 늙음으로, 살아 있음에서 죽음으로,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어제에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최초의 순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식으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방향으로, 기억의 밀도가 높은 시간에서 낮은 시간으로

 

흐르는 모든 존재는

흐르는 동시에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래로 아래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흘러오르다, 라는 말이 어디 있는가

 

고여 있거나

갇혀 있지 않는 한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물과 흙

피와 눈물

세포와 원소

사랑과 우정

또는 시간과 기억

 

원치 않았지만 그것이 끝내 우리를 데려가 부려놓는 곳

어떤 하류의 퇴적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 라는 동사는 더 이상 흐르지 못한다는 것을

-『가능주의자(나희덕, 문학동네,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