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우리말 이야기] 50대의 '향년', 그 어색함에 대하여

들꽃 호아저씨 2022. 5. 23. 11:06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50대의 '향년', 그 어색함에 대하여

 

'향년(享年)'이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다. '()''누릴 향' 자다. 50대의 부고에서 '향년'을 썼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은 '삶을 누렸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달 들어 한국 영화계와 문학사에 이정표를 세운 별들이 잇따라 스러져갔다. 지난 7원조 한류스타인 강수연 배우가 세상을 뜬 데 이어 8일엔 저항시인으로 통하던 김지하 선생이 별세했다. 언론은 앞다퉈 그들의 타계 소식을 전했다. “한국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월드스타강수연 씨가 7일 오후 3시쯤 별세했다. 향년 55.”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등의 작품을 남긴 김지하 시인이 8일 타계했다. 향년 81.”

 

50대, 삶을 누렸다고 하기엔 부족한 나이

 

누가 언제 어디서 ~으로 별세했다. 향년 OO.’ 신문·방송의 부고 기사는 대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정형화된 표현 양식이다. 서술어가 사망에서 별세, 타계, 운명, 작고, 영면, 서거등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달라질 뿐이다. 종교에 따라 선종(가톨릭), 소천(개신교), 열반 또는 입적(불교)’ 등을 가리기도 한다. 뒤에 향년이 따라붙는 것도 상투적이다.

 

그런데 두 문장에 쓰인 향년을 대하는 느낌이 좀 다르다. ‘향년 81는 괜찮은데, ‘향년 55는 왠지 어색하다.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예를 더 살펴보자. 올 들어 전해진 부고다. “국립발레단을 대표하는 유명 발레리나 △△△ 씨가 돌연 사망했다. 향년 31.” “국내 게임업계 벤처 1세대인 ◇◇◇ 씨가 향년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享年)’이란 한평생 살아 누린 나이다. 죽은 사람의 나이를 가리킬 때 쓴다. ‘()’누릴 향자다. 우리는 누리다를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마음껏 즐기거나 맛본다는 뜻으로 배우고 익혔다. 행복이나 영화, 자유, 권세, 인기, 풍요 등을 누린다. 50대의 부고에서 향년을 썼을 때 느껴지는 어색함은 삶을 누렸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한 나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하물며 30~40대라면 더할 것이다.

 

글쓰기에서 상투어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형화된 말투를 변형해 써야 한다. 가령 “31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같은 표현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벤처 1세대 ◇◇◇ , 54세 일기로 별세정도면 자연스럽다. ‘일기(一期)’란 한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즉 한평생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아깝게도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식으로,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쓸 수 있다.

 

평균수명 늘어 50대 ‘요절’도 어색하지 않아

 

40~50대의 죽음에 붙는 향년과 더불어 요절도 종종 시비의 대상이 된다. “향년 55세로 요절한 월드스타 강수연.” 어릴 요()에 꺾을 절()이 결합했다. 젊어서 죽는 것을 요절(夭折)이라고 한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둘지는 주관적인 것이라 특정할 수 없겠지만, 공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공자는 15세가 돼 학문에 뜻을 뒀다고 해서 지학(志學)이라고 했다. 20세가 되면 관례를 하는데 아직은 어리다고 하여 약관(弱冠), 30세는 뜻을 세우는 나이라 하여 이립(而立)이라고 했다. 40세는 비로소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불혹(不惑)이며, 50세가 되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여 지천명(知天命)이다. 60세는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 어떤 일을 들어도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이순(耳順)이라고 불렀다.

 

이를 통해 보면 옛날에는 40세만 돼도 불혹의 경지에 올랐던 모양이다.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을 정도니 가히 어른이라고 할 만하다. 뒤집어 말하면 그전까지는 젊다고 할 수 있으니 대략 마흔 전에 죽으면 요절이라고 했음 직하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80을 넘는 지금은 요절의 기준도 늘어났다. 더구나 40, 50대를 가리켜 불혹이니 지천명이니 할 만한 이가 몇이나 될까. 얼추 60은 돼야 겨우 불혹의 경지를 조금 느끼지 않을까. 그러니 요즘 기준으로 치면 40~50대의 죽음을 요절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다. 마치 약관이 원래 ‘20를 뜻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쓰임새가 넓어져 ‘20의 젊은 나이를 두루 가리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