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더블 베이스 버전) : 도미니크 바그너, 아우렐리아 비소반 - 어란, 리미 : 김태정

들꽃 호아저씨 2022. 6. 1. 11:52

 

 

프란츠 슈베르트Franz Schubert.(1797-1828) 아르페지오네 소나타Sonata in a-minor for arpeggione and piano

도미니크 바그너Dominik Wagner 더블 베이스(double bass) and 아우렐리아 비소반Aurelia Visovan 피아노(piano) play Franz Schubert's sonata in a-minor for arpeggione and piano, 더블 베이스 편곡arranged for double bass and piano.

Recording session: April 2019 at the Mozartsaal of the Wiener Konzerthaus

https://www.youtube.com/watch?v=0gbh3cwlqw8

 

도미니크 바그너Dominik Wagner 더블 베이스

 

 

어란, 리미 / 김태정

 

 

그애에게선 늘 비린내가 났다

어란에서 왔다는 배꽃 리에 아름다울 미

그러나 볼을 꽈릿빛으로 물들이며 웃는 모습은

차라리 동백꽃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했다

리미? 니미? 에라 니기미

더러 짓궂은 마을 처사들의 농에도

그저 배꽃처럼 수줍은 이를 감추며 웃던

간질을 앓는다는 그애. 배꽃 필 무렵이면

아프다던 스물아홉 나이가 문득 슬펐다

 

공양간 툇마루에 붙은 그애의 방은

차마 엿들을 수 없는 전설처럼

늘 고적하게도 닫혀 있었지만

 

햇살 다냥한 아침 박새란 놈

심심한 부리로 콕콕 방문을 두드려

살그머니 벌어지는 문지방 너머

파래처럼 젖은 머리카락 냄새

풀물 들어 눅눅한 잿빛 승복 냄새

스물아홉 처녀의 살 비린내가 뜨물처럼 설레어왔고

읽다 만 법화경 어느 구절엔

빛바랜 꽃잎인 듯

눈물자국이 비늘무늬를 새겨넣기도 했던 것이다

 

윤사월 달빛이

툇마루에 비파나무 그림자를 드리울 때

청어알처럼 잠든 방에서 그애

강오름물고기를 꿈꾸었을까

파동치는 꿈결 따라 어란, 그 고단한 푸른 물소리 밀려오면

뱃전에 튀어오르는 물고기떼처럼 그애

팔지느러미를 파닥이며 태앗적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는데

상처난 아가미로 비린 거품을

스물아홉 생의 바다를 토해내는 것이었는데,

 

리미는 저 비린내에서 왔을까

바다를 버린 물고기처럼

뭍으로 뭍으로만

 

달빛이 그니러워 그애,

온몸 파닥이며 비늘을 떨구던 밤

어미 몸을 벗어나는 치어 한마리

그 눈부시도록 아픈 난생의 비밀을

나는 그예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김태정, 창비, 2004초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