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우리말 이야기] 대박과 쪽박

들꽃 호아저씨 2022. 6. 3. 16:59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대박과 쪽박

 

수능이 얼마 남지 않으면서 학교나 종교 단체에서는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행사들이 많다. 마음 같으면 모든 학생들이 다 대박이 났으면 좋겠지만 일렬로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시험에서는 모든 학생이 대박이 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수능이라는 상황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지나치게 긴장하여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은 상황에 빨리 적응하고 승부에 따른 긴장감을 덜기 위해 시합 때까지 일정한 규칙과 순서에 따라 준비를 한다. 경기 전 일어나는 시간, 밥 먹는 시간부터 세부 훈련 순서 등 흔히 루틴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절차들을 꾸준히 해 나가면 실전에서도 평상시처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도 조급하게 생각하고 무리해서 공부하는 것보다 수능 날의 리듬에 맞추어 일정한 루틴을 지키는 것이 대박이 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운이 좋아서 크게 이득을 보는 일이나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대박'이라는 말은 역사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대박이 나다/터지다', '대박을 터뜨리다/치다'와 같은 말은 20세기 후반에 영화계에서 많이 쓰던 말이었는데,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新語) 조사 때 처음 기록되었다. 이 말은 영화가 크게 성공을 거두었을 때 사용했던 '빅 히트'(big hit)를 대체해서 쓰였던 것으로 보아서는 크게 망했을 때 사용하는 말인 '쪽박'과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전부터 완전히 망했다는 의미를 표현할 때는 관용적 표현으로 '쪽박/깡통을 차다'는 말을 흔히 사용해 왔다. 쪽박이나 깡통은 거지들이 구걸을 할 때 사용하는 필수품으로, 이것을 '(허리에) 차다'는 것은 완전히 망해서 거지가 되었다는 것을 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쪽박이다', '쪽박 나다'와 같은 형태로도 사용되면서 '쪽박'은 관용적 표현으로 사용되지 않아도 완전히 망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대박이라는 말은 완전히 망한 것을 뜻하는 '쪽박'(작은 박)과 반대되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익을 낸 영화를 말할 때 '중박'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을 보면 새로운 말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박 재미있다", "대박!"처럼 명사로 사용되던 '대박'이 부사어나 감탄사로도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유행어로 사전에 등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사회에는 '대박'을 좇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박이라는 것도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영화 '넘버 3'의 대사처럼 잠자는 개에게는 태양이 비치지 않는 법이다.

 

문화부jebo@msnet.co.kr

 

 

 

[21세기 문화어 사전] 대박

 

대박(大舶):바다에서 쓰는 큰 배 큰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대박:한꺼번에 큰 돈을 버는 것

용례: 영화 `친구`가 대박이라며.

 

사회에서 어떤 문화의 영향이 압도적일 때 그 영역에서만 쓰이던 용어가 일상어로 변모하는 경우는 흔하다. 30년 넘게 한국사회를 지배한 군사독재의 영향으로 `전투``민간인` `군기` `짬밥` 같은 군대용어가 일상어로 자리잡았다.

 

근래에는 인터넷문화의 영향으로 `쪽지``허걱`처럼 인터넷과 관련된 용어나 `386세대`처럼 컴퓨터에서 따온 말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우리 의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주식열풍이다 .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1999년 통계에 따르면 일반 가정의 30%정도가 하고 목돈이 생기면 60%이상이 하고 싶어한다는 주식투자는 언어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상종가``하한가` `기대주` 같은 말은 일상어가 됐다.

 

`큰 배`라는 의미이며 비유적으로 `큰 물건`을 뜻하던 `대박`도 주식투자에서 한꺼번에 큰 돈을 벌었을 때 주로 사용된다. 처음에 이 말은 도박판에서 쓰이기 시작했다가 도박판과 속성이 비슷한 주식시장으로 넘어오게 됐다.

 

리젠트증권의 이창석대리는 "특히 우리의 주식문화가 투자라기보다는 투기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증권사 객장을 넘어 아무 곳에서나 다 쓰인다. 복권에 당첨돼도 대박이고 벤처기업이 성공을 거둬도 대박이다. 영화나 음반이 성공을 해도 대박이고 바겐세일을 해도 `왕대박큰잔치`라고 한다.

 

또 회원을 모집하는 카드사나 이동전화사들의 거리홍보활동을 보면 하나 같이 `가입하시면 엄청난 대박이 쏟아진다`고 쓰여져 있다.

 

경희대 서정범 명예교수는 대박이라는 말이 이렇게 널리 쓰이는 이유를 "우리 사회의 요행주의와 결과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박` 뒤에는 늘 꼬리표처럼 `터지다`는 말이 따라 붙듯이 `대박`은 결코 노력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운으로 얻어지는 것이고, 일단 대박이 터지면 그 과정이야 어찌 됐건 무시할 수 없다는 심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앞 날을 예측하면서 게임의 룰을 지켜서는 부()을 이룰 수 없다는 사람들의 절망이 너도나도 `대박`의 꿈을 꾸게 한다.

 

2001/04/26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