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시가 만날 때

바흐 이탈리아협주곡, 차이콥스키 ‘사계’, 쇼팽 스케르초 넷 : 랑랑 - 여름잠 : 이문재

들꽃 호아저씨 2022. 7. 9. 17:16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이탈리아협주곡Italian Concerto in F Major, BWV 971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1840-1893)

사계’The Seasons, op. 37a

 

프레데리크 쇼팽Fryderyk Chopin(1810-1849)

스케르초 넷Four Scherzi

 

랑랑Lang Lang 피아노

at Bing Concert Hall, Stanford University | 2015

https://www.youtube.com/watch?v=EaEdq_8_0uk

랑랑Lang Lang  피아노

 

 

여름잠 / 이문재

 

 

비탈밭 옥수수가 휘청거린다.

목계 쪽에서 넘어오는 바람이 찰지다.

하지 때 들어와 웅크리고 있다 보니

시계가 없어도 지낼 만하다.

한 칸 컨테이너가 그새 옛집 같아졌다.

직육면체 안팎으로 여름이 치열하다.

사흘 동안 골짜기를 빠져나간 것이라곤

찰옥수수 가득 실은 일 톤 트럭 한 대뿐

 

어쩌자고 같은 말을 하지 않기로 한다.

또 한바탕 들이퍼부으려는지

귀래 쪽 능선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서울에 두고 온 걱정은 퉁틍 불어 있을 것이다.

무릎 껴안고 발톱 깎다가 문득 보았다.

백로 한 마리 솔숲으로 향하는데

하얀 날갯짓이 괜찮다 괜찮다 말하는  것 같았다.

며칠째 약 먹을 시간을 놓치고 있다  후둑

 

후두두둑, 솨아 솨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 ㅡ 넓어질 대로 넓어진 활엽들이

세찬 빗줄기를 받아내며 일제히 도리질을 한다.

잎사귀들이 뭔가 울컥울컥  토해 내는  것 같다.

컨테이너 속의 나도 난타당한다.

게릴라성 호우는 매번 가차없다.

 

치악산 쪽 하안거夏安居는 흉내 낼 수도 없고

겨울잠도 어림없는 소리

그래 이 느닷없는 산거山居를

하면夏眠, 여름잠이라고 부르자.

난생처음으로 잠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동지 때까지 휴대전화 전원을 더 꺼놓기로 하자.

그래서 그리고 그런데 따위의 말은 쓰지 않기로 하자.

 

-『지금 여기가 맨 앞』(이문재, 문학동네,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