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헷갈리는 우리말]늘이다, 늘리다
‘코스닥지수는 상승세로 출발한 뒤 오름폭을 조금씩 늘이다 오후 들어 코스피시장이 급등세를 타면서 490선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이 문장에 쓰인 ‘늘이다’는 ‘늘리다’로 바꿔 써야 합니다.
‘늘이다’는 ‘본래 길이보다 더 길게 하다’ ‘아래로 길게 처지게 하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즉 원래 있던 것을 길어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반면 ‘늘리다’는 ‘늘게 하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수, 세력, 넓이, 길이, 살림, 재산, 시간, 실력 등이 더 많아지거나 나아지게 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늘이다’가 쓰인 예를 살펴보면
ㄱ.그렇게 엿가락 늘이고 앉아 있지 말고 서둘러라.
ㄴ.문 앞에 발을 늘여 놓아 방 안이 보이지 않았다.
ㄷ.여윈 목을 늘여 한입 맛보려고 했다.
ㄹ.가파른 등산로에 철봉을 박아 밧줄을 늘여 놓았지만 오르기가 힘들었다.
ㅁ.찬바람이 휘몰아쳐 늘어진 커튼을 흔들었다.
ㅂ.먼지 무게로 축 늘어진 바람에 거미줄이 흔들린다.
‘늘리다’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가구수를 불법으로 늘리다 보면 주차장과 정화조 수요도 따라 늘어난다.
ㄴ.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면 체중은 자연적으로 줄어든다.
ㄷ.설계사 숫자만 늘렸고 회사 수익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ㄹ.내년 투자금액을 최대한 늘릴 계획이다.
ㅁ.이 회사는 가로등뿐 아니라 방범등에까지 시스템 활용분야를 늘려 나갈 계획이다.
ㅂ.투기세력의 부담을 늘려 부당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겠다.
2005/12/20 머니투데이
[우리말 바루기] 바짓단을 늘이는 것일까? 늘리는 것일까?
‘바짓단을 늘였다/늘렸다’처럼 ‘늘이다’ ‘늘리다’는 늘 헷갈리는 사안이다. 그간 나간 ‘우리말바루기’를 정리해 최근 펴낸 『우리말바루기』(하다) 책을 소개하는 기사가 보도되면서도 이와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기사가 나간 뒤 여러 분의 독자께서 메일을 보내 오셨다. 책 소개에 나와 있는 ‘바짓단을 늘렸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바짓단을 늘였다’로 나온다는 것이었다. 논란이 일게 된 과정은 이렇다.
과거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늘리다’를 ‘물체의 길이나 넓이, 부피 따위가 본디보다 커지다’는 뜻의 ‘늘다’의 사동사라 풀이해 놓고 ‘바짓단을 늘리다’를 용례로 올려 놓았다. ‘늘이다’는 ‘본디보다 더 길게 하다’로 풀이하고 ‘고무줄을 늘이다’ ‘엿가락을 늘이다’를 사례로 제시했다. 쉽게 얘기하면 길게 했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면 ‘늘이다’를 쓰는 것으로 돼 있다. 바짓단 은 한번 길게 하거나 짧게 하면 원상태를 회복할 수 없으므로 ‘늘리다’를 쓰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국어원이 지난해 9월 심의를 거쳐 ‘늘리다’의 풀이에서 ‘길이’를 제외했다. 그러고는 ‘늘이다’의 용례에 ‘바짓단을 늘이다’를 추가했다. 요즘은 국어원이 사전을 책 형태로는 발행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만 보여주므로 수정이 수월하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일반인이 알게끔 공표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바람에 대부분 사람이 이를 몰랐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치맛단을 늘리다’는 용례는 그대로 두는 실수도 발생했다. 책을 내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해 과거 연재했던 대로 ‘바짓단을 늘리다’가 맞는 것으로 나갔다. 독자의 메일을 받고 국어원에 문의한 결과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 국어원은 문의를 받고 ‘치맛단을 늘리다’는 용례도 부랴부랴 ‘치맛단을 늘이다’로 바꾸었다.
네이버사전·금성사전 등 현재 국립국어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사전이 과거 규정대로 ‘바짓단을 늘리다’고 돼 있다. 당분간은 혼란이 불가피한 사안이다. 정리하면 국어원이 지난해 9월 규정을 바꿈에 따라 바짓단과 치맛단은 ‘늘이다’가 맞다.
배상복 기자
국어원, 사전 변경 내용 주기적으로 공개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누리집 의 ‘의견 보내기’와 전화 상담 등으로 국민의 의견을 받고 있다. 국어원 내부에서도 상시적으로 점검해 보완이 필요한 사항을 찾아낸다.
이처럼 다양하게 접수되는 의견을 정리해 국어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표준국어대사전 정보보완심의위원회에서 논의하도록 한다. 여기에서 수정이 결정된 사항은 사전에 반영된다. 지난 10일자 우리말바루기 기사에서 언급된 ‘늘이다’와 ‘늘리다’의 수정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수정 배경은 이렇다. 2013년 2월 표준국어대사전에 ‘늘다01’의 예문으로 제시된 ‘바짓단을 늘리다’가 한글 맞춤법 규정 해설과 차이가 있음이 발견됐다. 1988년 고시된 한글 맞춤법 57항의 해설에서 “‘늘이다’는 ‘본디보다 길게 하다, 아래로 처지게 하다’란 뜻을, ‘늘리다’는 ‘크게 하거나 많게 하다’란 뜻을 나타낸다”고 하면서 ‘바지 길이를 늘인다’는 예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바지 길이 따위의 탄력성이 없는 물체의 길이를 길게 하는 것은 ‘늘리다’로 쓰도록 해 놓아 규범 해설과 사전 기술 사이에 차이가 발생했다. 언어생활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를 정리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실제 언어 사용 자료들을 분석해 보니 탄력성 여부와 관계없이 ‘길이를 길게 하는 것’에는 ‘늘이다’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근거로 해 심의위원회를 거쳐 ‘늘이다’와 ‘늘리다’의 용례와 뜻풀이를 2013년 9월 수정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사전에서도 ‘바짓단을 늘이다’가 됐다.
웹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수정 사항을 일반 독자들은 바로 알기 어렵다는 우리말바루기의 지적에 대해 앞으로는 사전의 주요한 수정 보완 사항을 주기적으로 공개하기로 했음을 알려 드린다. 이로써 일일이 검색해 봐야 알 수 있었던 변경 내용을 일정한 곳에서 한꺼번에 찾아볼 수 있게 돼 사전 이용이 더욱 편리하게 될 듯하다.
황용주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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