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톺아보기] 있다가, 이따가
요즘 약속은 대부분 문자로 이뤄진다. “그래, 그럼 이따가 거기서 만나.”라고 문자메시지를 친구에게 보낼 때 고개를 갸웃거린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있다가’라고 써야 하나, ‘이따가’라고 써야 하나?
‘있다’라는 말이 있으니 ‘있다가’가 맞고, 소리 나는 대로 쓴 ‘이따가’는 틀린 표기일 거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있다가’와 ‘이따가’는 둘 다 맞는 표기다. 다만 뜻과 쓰임새가 다르므로 잘 구분해서 써야 한다.
‘있다가’는 ‘있다’의 어간 ‘있-’에 ‘먹다가, 자다가, 가다가’ 할 때의 ‘-다가’가 붙어서 된 말이다. ‘-다가’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지 못하고 바뀌게 되는 상황에 쓰이는 연결어미다. 따라서 동사나 형용사 어간에 ‘-다가’가 붙으면 앞의 동작이나 상황이 달라짐을 나타내는 다른 서술어가 따라 나오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먹다가’가 쓰이면 ‘먹다가 잠이 들었다’든가 ‘먹다가 말았다’처럼 먹던 상황이 지속되지 못하고 장면이 달라지는 상황을 나타내는 서술어가 뒤따르게 된다. 따라서 ‘있다가’는 ‘어떤 장소에 머무르거나 존재하다가’ 또는 ‘어떤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가’ 등의 뜻을 나타내며 뒤에 장면의 전환을 나타내는 다른 서술어와 연결이 된다.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저녁에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든가 ‘음식을 삼키지 않고 입에 물고 있다가 뱉었다.’같이 쓰인다.
‘이따가’는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를 뜻하는 부사이다. 어원적으로는 ‘있다가’로부터 나왔지만, 본뜻인 ‘존재하다’로부터 뜻이 상당히 멀어졌다고 판단하여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하고 있다. ‘이따가 만나자’거나 ‘잠시 쉬었다가 이따가 다시 할게.’에서처럼 ‘잠시 후에’의 뜻을 나타낼 때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우리말 바루기] 자세한 얘기는 있다가 하자고?
남성은 대체로 체계화를 잘하고 여성은 의사소통과 공감 능력이 발달했다. 여자들이 만나서 장시간 수다를 떠는 것도 모자라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통화하자”며 헤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통화하자”를 문자로 보낼 때 ‘이따가’를 ‘있다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있다’란 말이 있으니 ‘있다가’가 맞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라는 의미의 부사 ‘이따가’가 와야 자연스럽다. ‘이따가’ 뒤에는 꾸밈을 받는 서술어가 온다.
“있다가 인사동 찻집에서 만나” “운전 중인데 있다가 전화하면 안 될까?” “손님이 있다가 또 들른다고 했어요”와 같이 쓰면 안 된다. 모두 ‘이따가’로 고쳐야 한다. ‘이따가’도 어원적인 형태는 ‘있다가’이지만 본뜻에서 멀어졌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있다가’는 ‘있다’의 어간 ‘있-’에 어미 ‘-다가’가 붙은 형태로 쓰임이 다르다.
‘있다’는 어떤 장소에 머물다, 존재하다, 어떤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다가’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 따위가 중단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이 어미가 붙으면 앞의 움직임이나 상황이 달라짐을 나타내는 다른 서술어가 뒤따른다. “조용히 쉬고 싶다며 보름가량 여기에 있다가 갔어요” “늘 곁에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하다” “가만히 있다가 고함지르는 바람에 놀랐다”처럼 쓰인다.
문맥을 살펴보고 ‘잠시 후에’의 뜻이면 ‘이따가’를, ‘~에 머물다가’ ‘에 존재하다가’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가’의 뜻이면 ‘있다가’를 사용하면 된다.
이은희 기자http://eunhee@joongang.co.kr
[우리말 바루기] "그럼 있다가 뵈요."(?)
친한 후배와 점심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날, 사무실을 나서니 날씨가 추워져 싸늘한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시청 앞으로 두 팔을 허위허위 흔들며 조금 빨리 걸었다. 소박한 점심을 즐겁게 먹고 헤어지는데, 후배 왈, “그럼 있다가 뵈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에 모임 약속이 있었지. “그려―.”
우리가 말로 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글로 적으면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럼 있다가 뵈요”는 별문제가 없을까. 우선 ‘있다가’를 보자. “밖에 눈이 오니 여기 조금 더 있다가 눈이 그치면 나가자”라고 할 때처럼 ‘있다가’는 용언 ‘있-’에 ‘어떤 동작이나 상태 따위가 중단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연결어미’인 ‘-다가’가 결합한 형태다. ‘있다가’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가’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있다가’와 똑같은 발음이 나는 ‘이따가’도 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보면 ‘있-’에 어미 ‘-다가’가 결합된 말로 보이지만, 현대 국어에서는 ‘있다’의 의미에서 이미 멀어져 다른 뜻, 곧 ‘조금 지난 뒤에’라는 뜻의 부사로 굳어져 쓰이기 때문에 원형을 밝히지 않고 ‘이따가’로 적는다. 그러니 “이따가 보자”라고 하면 “조금 지난 뒤에 보자”라는 의미다. ‘이따가’는 ‘이따’로 줄여 쓸 수도 있다. 따라서 “그럼 있다가 뵈요”에서 ‘있다가’는 ‘이따가’로 바로잡아야 한다.
다음 ‘뵈요’를 보자. ‘뵈다’는 ‘보이다’에서 온 것으로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라는 뜻이다. ‘뵈다’의 뜻풀이는 ‘웃어른을 대하여 보다’이지만 그 속뜻은 내가 웃어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웃어른에게 나를 ‘보이는(보여주는)’것이다. ‘뵈요’처럼 어간 ‘뵈-’ 뒤에 어미가 붙지 않고 바로 보조사 ‘요’가 붙을 수는 없다. 어간 ‘뵈-’ 뒤에 어미 ‘-어’가 붙은 ‘뵈어’의 준말인 ‘봬’ 뒤에 ‘요’가 붙은 것이므로 ‘봬요’와 같이 적어야 바르다. 그래서 “그럼 있다가 뵈요”는 “그럼 이따가 봬요”라고 해야 정확한 표기가 된다. 이 ‘뵈다’보다 더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말로 ‘뵙다’가 있다.
최성우 기자
[우리말 톺아보기] 이따가 봬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교사들이 국어 시간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게 한다. 받아쓰기를 시키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국어의 맞춤법을 알려주기 위함인데, 한글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 어법에 맞도록 한다는 것은 뜻을 파악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각 형태소의 본 모양을 밝혀 적는다는 말인데, 예를 들어 ‘꽃이’가 [꼬치]로 소리 나지만 이를 소리대로 ‘꼬치’로 적는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본 형태소 모양대로 명사인 ‘꽃’과 조사인 ‘이’를 분리해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대생들이 남자 친구에게 가장 실망했을 때가 맞춤법에 틀린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온 것처럼 맞춤법은 교양인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맞춤법 실수가 난무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감기 빨리 낳으세요” “진짜 어의가 없다” “이 정도면 문안하죠” “있다가 뵈요” 같은 내용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감기 빨리 나으세요” “진짜 어이가 없다” “이 정도면 무난하죠” “이따가 봬요”가 바른 표현이다. 특히 “있다가 뵈요”는 가장 흔한 맞춤법 실수인데, ‘있다가’는 ‘머물렀다가’의 의미이기 때문에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이따가’로 고쳐야 하고 ‘뵈요’는 어간 ‘뵈-’ 뒤에 연결어미 ‘-어’가 빠졌기 때문에 ‘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봬요’로 적어야 한다. 이와 비슷한 실수로 “너무 오래 되서”, “명절 잘 쇠라”, “바람을 쑀어요” 등이 있는데, ‘되어서’, ‘쇠어라’, ‘쐬었어요’로 적거나 줄여서 ‘돼서’, ‘쇄라’, ‘쐤어요’로 적어야 한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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