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아저씨께서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아주 오래된 죽음”이라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제게 남긴 이 글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도 읽고 장례가 끝나고도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또 읽겠지요. 호아저씨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전 미웠습니다. 냉대로 한 가족을 사지로 내몰은 사회가 밉고 무관심으로 발 한 쪽 디딜 곳 없는 이 시대가 아팠습니다. 가해를 하고도 아무도 책임지려하지 않고 멀찍이 서서 방관만 하고 구경만 하는 이들이 미웠습니다.
제가 밉다고 하면 생전에 호아저씨께서는 “다들 살기에 바쁘잖아” 하셨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갔는지 그저 한스럽고 슬플 뿐이었습니다. 죽음보다 못한 삶을 어찌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삶이라 할 수 없는 삶을 견디기란 호아저씨와 은수 어머니에게는 너무 가혹했습니다. 학폭으로 떠난 은수를 보내고 산 호아저씨의 5년의 삶은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산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미 그때 죽음이었습니다. 아니 호아저씨의 삶은 사는 게 죽음이었고, 죽음이 사는 거였습니다. 호아저씨는 하루가 천만년 같다고 하셨습니다. 형벌도 이런 형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견디다 못한 호아저씨는 죽음으로써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아팠습니다. 죽어야만 살 수 있는 이 사회.
냉대와 무관심으로 일가족을 죽음으로 내 몬 사회에 감사해야 할까요? 한 가족을 죽게 해서 살게 하는 이 사회를.
몸과 마음을 다 비우고 떠나신 호아저씨는 평온해 보였습니다. 제게 큰 산이자 어른이셨던 호아저씨를 보면서 욕심과 욕망으로만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아픈 이들을 외면하지는 않은지 제 자신을 돌아다보고 들여다봅니다. 지인들에게 호아저씨 이야기를 하면 어떤 이들은 제가 우울이나 슬픔에 빠질까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호아저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울하기도 합니다. 우울한 이야기는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호아저씨께서 남긴 글의 제목을 곱씹으며 호아저씨를 삶이 아닌 삶에서 그래도 5년을 견디게 한 그 실낱같은 빛은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합니다. 살만한 세상이라고 하지는 않아도 못 살겠다 하는 세상, 그래서 세상을 저버리는 사회는 부디 아니었으면 합니다. 그러자면 내 삶의 태도가 어찌해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서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아저씨를 떠나보내며 호아저씨의 죽음이 제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루마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부디,
이 세상이 아닌 그곳에서는
호아저씨께서 평온하시기를 위무합니다.
호아저씨,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2023.10.23 호아저씨를 떠나보내며 하루마음이.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1770-1827)
피아노소나타 32번Klaviersonate Nr. 32 in c-Moll Op. 111
I. Maestoso-Allegro con brio ed appassionato
II. Arietta-Adagio molto, semplice e cantabile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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