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열사

[오늘의 열사]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우리는 한 번만 이기면 되지 않느냐” : 장현구 열사(1969-1995.12.14)

들꽃 호아저씨 2021. 12. 14. 12:5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베니스산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 Venise 1711

Les six suites pour violoncelle de JS Bach, interprétées par 

https://www.youtube.com/watch?v=4l5Ef8hMXEg

 

 

▲ 장현구 열사(1969-1995.12.14) : 1995년 당시 경원대학교 제9대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추진위원장으로서 자주학원 건설을 위해 투쟁했던 장현구 열사는 학교의 고소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후유증 끝에 1995년 12월 4일 송파 사거리에서 분신, 10일 후, 12월 14일 운명하였다.

 

 

 

정수형 보세요.

저는 이곳에서 휴가라도 보내는 듯 편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따듯하게 잘 해주고, 또한 의장님의 모습도 가끔 보곤 합니다. 그들은 나하고 대화를 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만날 때마다 큰 힘을 받곤 합니다.

형, 날씨가 매우 추운데 잘 지내는지 궁금해요. 택이도 잘 있는지 궁금하고요. 형의 편지 받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나가서 만나보고 싶을 뿐입니다. 이곳에 친구들 그리고 선배님, 후배들과 혼자 떨어져 있으니 학교에 있을 때 동료들에게 잘못한 것만 생각이 나고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나요. 동지들의 따사로움을 여기서 느끼는 가 봅니다.

여기서도 선거 소식을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기대도 많이 했는데. 역시나 였습니다. 잠시나마 선거에 대한 환상을 가졌었나 봐요. 그렇지만 형 힘나는 말 한마디만 쓸게요. 누군가 그랬듯이 “우리는 한 번만 이기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생각나요. 저들은 또다시 매번 우리를 탄압해야 이기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요.

형 오늘부터 편지를 할 수 있어요. 매일 매일 한통씩 편지 할게요. 그리고 상수, 현이형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물론 내일이면 편지하겠지만. 그리고 까까형도 몸조심하시라고 전해주세요. 형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마지막 말을 써야 잘 썼다고 할지 모르겠네요.

형 추운데 몸조심 하세요.

12월 30일 현구


- 장현구 열사의 편지에서 

 

 

 

 

 

고 장현구 후배를 추모하며...

 

현구야, 너를 보낸지 오늘이 몇 일째인지 아니?

지난해 1214일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동생 현기가 있는 가운데 편안히 눈을 감았고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이 세상을 떠난 너를... 나는 지금 빈소옆 안치실에 굳게 잠겨있는 냉동실 안에 누워있는 너를 생각해본다.

 

내가 처음 공대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너를 알게 되었고, 같이 울고 웃으면서 학생회 일을 했고, 깊은 밤 날새는 줄 모르면서 술잔속에 서로를 확인했었지. 내가 총학생회에서 학원자주화 일을 시작했을 때, 너 역시 나와 같은 생각과 자세로 같이 하였고 인간이라 생각하기 조차 끔직한 학교의 탄압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누리지 않았겠니?

 

92년 고소와 고발 그리고 제적된 몸으로 8명의 전담 형사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공명선거 캠페인을 하러 성남시내로 나갔다가 연행된 날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구나. 밤이 새도록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현구 너를 훈방시키려 갖은 방법과 애를 써 보았으나 결국은 죄인아닌 죄인이 될 수 밖에 없었고, 학교 당국은 어떻게든 구속시키려고 학교 내에서 일어났던 고소, 고발 사건의 자료를 제공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치를 떨었단다. 결국 나 역시도 두달뒤에 구치소로 넘어갔고.

 

기억나니? 너는 재판을 받기위해 나와 영복이는 검사 취조를 받기 위해 포승줄에 묶이면서도 당당하고 의연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너는 재판을 받고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두달 뒤 너를 만날 수 있었지. 구치소 면회와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나간 너를 걱정했지만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는지 지금에서나 알 수 있었다.

 

내가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몇 일을 보내고 나니 너는 병원에 입원을 했더구나. 필동, 용산에서 너를 면회했을 때 손과 뜨미한 눈으로 고개 숙이며 어색해야 하는지, 무엇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가슴이 메였다. 무엇이 그토록 너를 힘들게 만들었기에 혀를 깨물고, 옥상에서 투신하며, 수면제를 한 꺼번에 먹었으며 끝내는 아무런 말없이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이렇게 두눈이 함몰되고 살이 썩어 문드러지면서까지 안치실에 한달이 넘도록 누워있는거니너는 너무도 순박했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이 시대의 양심이었으며 너를 이렇게 만든 모든 사람들마저도 용서했다.

 

현구야!

너가 떠난 빈자리가 아무리 크고 아픈 상처가 깊을지라도 난 이제 너를 편히 보낼수 있고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한달이 다 되도록 모든 것을 뒤로하고 농성하는 후배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직장도 그만두고 이곳을 지키는 동문들, 우리들의 주장에 동감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잊지않는 옆 상가의 조문객들.

 

현구야!

이제는 모든 것 우리들에게 맡기고 편히 눈을 감아라. 서럽고 아쉬운 것, 하고 싶거나 못한 일 모두 우리가 하마. 아버님, 어머님, 현기도 걱정마라. 이제는 의연하게 이겨내고 계시며, 너를 떠나 보내며 수많은 아들, 딸을 얻으셨다. 그리고 나도 너를 대신하여 앞날을 살 것이다. 현기도 의젓하고 모두가 너를 보낸 슬픔에서 일어나 너를 이렇게 만든 학교당국과 경찰을 단죄하는 의로운 일에 손발을 걷어 붙였으며 승리는 눈앞에 직면하였다. 이생에서 못다한 너와 인연을 다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그들의 말로를 보며 웃자꾸나.

 

19961월 경찰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