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우리말 이야기] 준말의 세계(1)

들꽃 호아저씨 2022. 1. 11. 16:46

 

 

[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준말의 세계(1)

 

 

준말은 말의 시장에서 효용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같은 의미를 담아내는 한 편리성 때문에 짧은 말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준말이 본딧말을 밀어내고 표준어가 되는 사례도 많다. '무우'''가 함께 쓰이다가 오늘날 ''만 표준어가 된 게 그런 경우다. 이 말은 원래 중세 국어에서 '무ㅿㅜ'였던 것이 ''이 소멸하면서 '무우'로 변한 것인데,나중에 준말 ''가 더 널리 쓰임에 따라 '무우'는 버리고 ''가 표준어가 됐다.

준말은 일상에서 매우 흔히 볼 수 있다. "야 임마!" "오랫만에." "이런 쑥맥 같으니라고." "흉칙하게스리" "남사스럽다." "애인에게 채였다." "내꺼야!" "서툴은 방식으로." "이거 얼마에요?" 이런 말들에 모두 준말이 쓰였다. 그런데 여기 쓰인 준말은 모두 바른 표기가 아니다.

준말의 유형에는 고정된 틀은 없지만 크게 보면 '어제그제(본말)엊그제(준말)''바깥벽밭벽' '(세금을)거두다걷다'처럼 본딧말의 잔형이 남아있는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임마'가 익숙해 보일지 몰라도 이 말은 '인마'가 바른 말이다.

수많은 표준어를 일일이 외우기는 버겁지만 논리적으로 들여다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다. 이 말은 '이놈아'가 준말인데 ''의 초성과 종성이 남아있는 형태가 '인마'. '이 녀석아인석아'의 관계를 떠올리면 기억하기 쉽다. '오래간만'이 줄면 '오랫만'이 아니라 '오랜만'으로 된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흔히 쓰는 말 '남사스럽다'도 근거가 없기 때문에 표준어가 되지 못했다. 이 말의 본딧말은 '남우세스럽다'이다. '남우세''남에게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것. 또는 그 비웃음이나 조롱'을 뜻한다. '남우세''+우세'로 분석되는데 여기서 '우세'는 어원이 확실히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그 형태와 의미상 '웃다'와 관련된 말로 풀이된다. '남우세스럽다'가 줄어든 말이 '남세스럽다'이다.

비록 '남사스럽다'가 입말에서 많이 쓰이곤 있지만 '남우세''남사'로 형태를 바꿔가며 줄어드는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를 표준으로 인정치 않는 것이다.

'사이''마음''싸움''선보이다선뵈다''도리어되레' 따위가 모두 둘 이상의 음절로 된 말이 줄어 만들어진 말들이다.

준말의 사례는 워낙 다양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기는 불가능하다. 가령 '올해'가 줄어 ''이 되는 것처럼 아예 일부 음절이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사리 분별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숙맥''숙맥불변(菽麥不辨:콩인지 보리인지 모른다는 뜻)'이 준말이다. 이 말은 '쑥맥'으로 잘못 알고 쓰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흉칙하다'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면 본딧말 '흉악망측(凶惡罔測)'을 기억해 두면 된다. 준말은 당연히 '흉측'이다.

 

2006/08/28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