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Dmitrij Schostakowitsch(1906-1975)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7. Sinfonie C-Dur op. 60, »Leningrader Sinfonie«
I. Allegretto
II. Moderato (poco allegretto)
III. Adagio – Largo – Moderato risoluto – Largo – Adagio
IV. Allegro non troppo – Moderato
프랑크푸르트방송심포니hr-Sinfonieorchester – Frankfurt Radio Symphony
클라우스 마켈라Klaus Mäkelä
hr-Sinfoniekonzert Alte Oper Frankfurt, 1. November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GB3zR_X25UU&t=148s
“어머님... 그러나 사회의 불의를 보면서 그냥 죽은듯이 공부를 하고 일신의 명예를 위해 살아갈수는 없었읍니다.”
-1984년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중에서
▲ 강민호 열사(1966-1990) : 한신대학 시절 강민호 열사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으며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사건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하다 2년형을 선고받았다. 열사는 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대학졸업장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삶을 받아들이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1990년 3월 28일 열사는 반월공단 내 대붕전선에 입사한다. 대붕전선은 약1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곳으로 12시간씩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는 사업장이었다. 강민호 열사는 입사한지 8일째(이틀째 야간 근무) 되던 날 야간 작업에서 연신기 주위에 있는 폐선을 치우기 위하여 1.5미터 되는 연신기 기계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 메고 있던 폐선이 회전하는 연신기에 휘말리면서 몸도 따라 들어가 운명하였다.
나는 한평생 노동자로서 개척하며 살아갈 것이다.
역사의 가장 진보적인 계급으로서
선배 열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런 노동자로서 한평생을 후회없이 살아갈 것이다.
지난 날의 모든 나약함을 과감히 버리고
민중사회를 향해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오로지 앞만을 향해 전진할 것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결의한다.
한평생 후회없이 싸우다 가련다.
우리를 억압하는 반동의 무리들을
처단하는 투쟁의 최전선에서 서서...
그리하여 우리가 승리하고 해방된 사회를 본다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조국해방 만세를 힘차게 부를 것이다.
- 강민호 열사의 글 '대망의 90년대를 맞이하는 새해에' 일기를 발췌
“그 순한 녀석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에미로서 가슴이 아픈 반면 대견하게 여긴 일도 있다.
(…)
나같은 엄마, 이 땅의 아픔 때문에 자식을 잃어야 하는 부모가 다시는 생겨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그것이 바로 우리 민호가 이땅의 아들로 산화해간 의미가 아닐까.”
-강민호 열사 어머니(김혜수) 인터뷰 ‘잊은 수 없는 아들 생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