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세 vs 수돗물
‘수도+물’은 누구나 ‘수돈물’로 발음
콧소리 ㄴ 때문에 사이시옷 추가
그러나 ‘수도+세’처럼
한자어들 사이에는 사이시옷 허용 안 해
‘수도세’와 ‘수돗물’ 표기는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같은 ‘수도’에 붙었는데 ‘수돗물’에는 ‘ㅅ’을 넣고 ‘수도세’에는 쓰지 않다니. 이상하질 않은가. 내가 쓰는 말을 들여다보는 일이 이런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준다.
먼저 ‘수도’에 ‘물’을 더해 소리 내 보자. [수돈물]이라 한다. 발음에서 ‘수도’와 ‘물’에는 없었던 ‘ㄴ’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이 ‘ㄴ’ 때문에 수돗물에 ‘ㅅ’을 쓰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수도’와 ‘물’을 더할 때 사이에 ‘ㅅ’이 있어서 우리가 ‘ㄴ’을 발음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있었던 ‘ㅅ’은 왜 ‘ㄴ’이 된 것일까.
우리는 모두 두 개의 공깃길을 사용해 말을 한다. 하나는 입을 통해 소리 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 소리 내는 길이다. ‘수도+ㅅ+물’을 발음한다고 해보자. ‘ㅅ’은 입소리이고 뒤이은 ‘ㅁ’은 코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들을 각각 소리 내려면 짧은 시간에 공깃길을 얼른 바꾸어야 하지만 입은 그런 복잡한 일을 하지 않는다. 콧소리인 ‘ㅁ’을 발음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코로 가는 통로를 열어버린다. 그러면 ‘ㅅ’은 같은 위치의 콧소리인 ‘ㄴ’으로 바뀐다. 우리 모두는 이런 원리로 소리를 낸다. 모두가, 정확히.
‘수돗물’의 ‘ㄴ’ 소리 때문에 ‘ㅅ’을 적는 것은 우리가 저절로 내고 있는 이런 소리의 원리 때문이다. 비슷한 예들을 읽으면서 ‘ㄴ’을 확인해 보자. 외우려고 하지 말자. 자신의 말소리의 원리를 확인해야만 맞춤법을 이해할 수 있다.
―윗마을, 아랫마을, 깻묵, 잇몸, 빗물, 냇물, 노랫말, 존댓말, 혼잣말…
―나뭇잎, 댓잎, 깻잎, 예삿일, 훗일…
그렇다면 ‘수도+세’에는 왜 ‘ㅅ’이 없는가. 이 말의 발음은 [수돋쎄/수도쎄]다. ‘세’의 ‘ㅅ’이 된소리가 되는 것을 보면 ‘ㅅ’을 넣어야 하는 위치가 맞다. 하지만 현행 맞춤법은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에는 ‘ㅅ’을 적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에 ‘ㅅ’을 적는다면 ‘ㅅ’ 표기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병원의 예만을 들어 보자.
―내과, 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치과, 소아과, 마취과…
한자어들 사이에 ‘ㅅ’ 표기를 허용한다면 모두 ‘ㅅ’을 적어야 할 예들이다. 하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예외 조항으로 6개의 예를 두기는 하였다. 이 중에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것은 세 개뿐이다. ‘셋방, 횟수, 숫자’가 그것이다. 자주 사용하는 것만 기억해 두자. 다른 예인 ‘툇간, 곳간, 찻간’은 문서에서 사용하는 일이 드물어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고유어를 포함한 말에도 한자어에서처럼 ‘ㅅ’ 표기를 안 할 수는 없느냐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정책과 관련된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된다 할지라도 기억할 것이 있다. ‘ㅅ’ 표기는 우리의 말소리 때문이지, ‘ㅅ’을 적어야 한다는 맞춤법 때문은 아니었다. ‘ㅅ’ 표기를 하지 않는 원칙을 둔다 할지라도 말소리와 새로운 표기 사이에서 분명 혼동을 겪게 될 것이다. 지금만큼이나.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콧김, 머릿속, 등굣길, 하굣길
이들을 ‘코김, 머리속, 등교길, 하교길’로 쓰면 간결하고 의미도 분명해질 것이라는 불만이 많다 했다. 하지만 불만 너머에 먼저 경탄할 일이 있다. 우리는 사이시옷을 써야 할 이 단어들을 정확히 된소리로 발음한다. 배우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그 규칙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말답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규칙들을 훌륭하게 활용하는 능력자들이다. 맞춤법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 안의 규칙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표기가 우리의 발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발음이 표기를 만드는 것이다.
김남미 서강대 국제한국학연구센터 연구교수 국어국문학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길 이름, 사이시옷 안 쓴다
조생종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엔 코스모스가 '철없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원래는 '계절(철) 없다'는 뜻이었겠지만, '철없다'로 붙여 쓰면 '사리를 분별할 만한 지각이 없다'는 뜻이 된다. 섭리에 따라 꽃피운 코스모스로서는 많이 억울했을 법도 하다.
세상일이 대개 이렇다. 잘 모르면 오해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려고 애쓰는 일이 바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일이 되는 셈이기도 하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뒤로 가는' 도로명…맞춤법 엉망>이라는 '시민기자'의 기사가 실렸다. 지금 바꾸고 있는 '도로명 주소'가 한글맞춤법에 어긋나 문제라는 내용이었다.
기사인즉, '고개길'이 아니라 '고갯길'로 쓰듯이,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는 복합어는 한글맞춤법 제30항에 따라 사이시옷을 넣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엉터리 표기라는 것. 그래서 '해돋이길, 후리소리길, 까치고개길'을 '해돋잇길, 후리소릿길, 까치고갯길'로 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이다.
지난 2001년 6월 20일 국립국어원은 '도로명(○○길)의 사이시옷 표기'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4일 열린 국어심의회는 공청회 결과를 바탕으로 이런 원칙을 확정했다.
"'새주소 부여사업'의 하나로 새로 명명하고 있는 도로명 고유명사 '○○길'에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는다."
새로 이름 붙이는 도로명이기 때문에 현실발음이 된소리라는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게 첫째 이유. 또 복합어뿐만 아니라 구에서도 된소리가 날 수 있는데, 도로명은 '○○'+'길'로 분리되는 구로 보는 것이 타당하기에 이런 결론이 내려졌다. 게다가 '○○경찰섯길'이나 '○○여곳길' 같은 이름은 되레 '○○경찰서길'이나 '○○여고길'보다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 않은 길 이름 '해돋이길, 후리소리길, 까치고개길'은 틀린 게 아닌 것. '대팃길, 달맞잇길'이 아닌 '대티길, 달맞이길'이 옳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고개길'이 아닌 '고갯길'로 쓰는 것은 이 말이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이기 때문이니 헷갈리지 말 것.
2008/10/07 부산일보
[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사이시옷 정리
사이시옷은 누구에게나 골칫거리지만 규정을 잘 알고 눈으로 익히며 외우는 수밖에 별 뾰족한 길이 없다.
사이시옷이 붙는 환경은 순 우리말 합성어에서 3가지, 순 우리말+한자어 합성어에서 3가지, 한자어에서 1가지로 모두 7가지다.
'순 우리말+순 우리말' 합성어 중에서 3가지는 (1)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냇가,햇볕) (2)뒷말 첫소리 'ㄴ,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아랫니, 잇몸) (3)뒷말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날 때(뒷일, 깻잎)이다.
'순 우리말+한자어' 합성어에서 3가지는 (4)뒷말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거나(콧병, 햇수) (5)뒷말 첫소리 'ㄴ, ㅁ'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곗날, 툇마루) (6)뒷말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소리가 덧날 때(가욋일, 훗일)이다.
그리고 끝으로 (7)두 음절로 된 한자어 6개(곳간, 셋방, 숫자, 찻간, 툇간, 횟수)가 있다.
헷갈리는 말 100개를 정리했다.
갈댓잎, 감잣국, 갯값, 건넛마을, 계핏가루, 고양잇과, 공깃밥, 군홧발, 귀갓길, 근댓국, 기댓값, (기와집), 꼭짓점, 나랏돈, 나랏빚, 난롯불, 날갯짓, 냉잇국, 노랫말, 노랫소리, 노잣돈, 놀잇배, (농사일), 눈칫밥, 단옷날, 담뱃잎, 답삿길, 대푯값, 덩칫값, 도낏자루, (도매금, 동아줄), 등굣길, 등댓불, (마구간), 마릿수, 만둣국, 만홧가게, 맥줏집, (머리기사, 머리말), 머릿돌, 며느릿감, 모깃소리, 뭇국, 바닷고기, 바닷모래, 바닷새, 배뱅잇굿, 배춧국, 뱃멀미, 북엇국, 비췻빛, 빨랫방망이, 사잣밥, 상갓집, 색싯집, 선짓국, 소싯적, 소줏집, 송홧가루, 순댓국, 시곗바늘, 시빗거리, 시줏돈, 신붓감, 신줏단지, 쌈짓돈, 연둣빛, (예사말), 예삿일, 외갓집, 우윳빛, (인사말), 일숫돈, 잉엇과, 자릿세, 자줏빛, 장삿속, (전세방), 전셋집, 조갯국, 존댓말, 종갓집, 종잇장, 죗값, 주머닛돈, 주삿바늘, 처갓집, (초가집), 출셋길, 콧방귀, 파랫국, 판잣집, (피자집), 하굿둑, 호숫가, 혼잣말, (화병), 활갯짓.
2006/03/14 부산일보
'우리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말 이야기] 그래선지, 내가 널 업기까지 했으니까 먼 갈치잡이 뱃불까지 내게 업혔던가 샐쭉하던 초생달까지 내게 업혔던가 ⟶ ‘초승달’일까 ‘초생달’일까? (0) | 2022.07.01 |
---|---|
[우리말 이야기] 쇠가 되었다가 징이 되었다가 암깽 수깽 얽고 섥고 ⟶ 얽히고설키다 : 얽다-섥다 (0) | 2022.06.29 |
[우리말 이야기] 그대 뒤에 서면 흐린 들판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 뒤에 서면 (0) | 2022.06.29 |
[우리말 이야기] 이런 옛날이 대전역이 좋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도 국수발을 닮아서 좋다 : 국수발⟶국숫발 (0) | 2022.06.26 |
[우리말 이야기] 기침이 엥간하다 싶었는데 찬바람이 부니 다시 도지는걸 - 엔간해서는 맞히기 힘든 문제 (0) | 2022.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