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글찻집] -고 있다?/최인호
“그는 아내의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김동인·배따라기)
“어느덧 C의 팔은 비스듬히 춘심을 안고 있다.”(현진건·타락자)
“어린 것을 꼭 안아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전영택·하늘을 바로 보는 여인)
“그는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C의 팔은 비스듬히 춘심을 안았다/ 어린 것을 꼭 안고 웅크리고 떨었다.”
이 보기는 정광 교수(고려대)가 논문(1920~30년대 문학작품에서 보이는 일본어 구문의 영향)에서 ‘-고 있다’ 꼴이 일본어(-ている)에서 영향을 받은 글투임을 보기로 든 것들이다. 빗금(/) 부분은 정 교수가 이를 자연스럽게 고친 말이다.
20~30년대 일본물을 먹은 작가들이 이런 진행형 문장을 썼다는 얘기인데, 요즘은 일본말보다 영어 쪽(-ing)의 영향을 직접 받아 아무나 일상적으로 써대는 형편이다.
‘-고 있다’ 말고 ‘-는 중이다’도 흔히 보인다. 심지어 이 두 말을 합쳐서 “하고 있는 중이다, 가고 있는 중이다, 벌이고 있는 중이다”와 같은 말들까지 마구 만들어 쓴다. 이에 더하여 ‘있다’의 높임말인 ‘계시다’까지 ‘-고 계시다’로 얽어댄다.
몇 해 전 국어원에서 우리말 잦기조사를 했을 때 특히 자주 쓰이는 말 열 가지 중 ‘있다’붙이가 ‘것·하다’에 이어 셋째(보조동사)와 넷째(형용사) 자리를 차지했는데, 특히 보조동사 쪽의 쓰임은 이런 일본말과 영어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쓸만한 말이라면 번역투라고 내칠 일은 아닐 터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많이 써 제대로 된 표현을 죽인다는 점, 이로써 갈수록 문장이 너절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제품 분야는 발효유.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개의 브랜드를 그가 관리하고 있다 → 현재 그가 맡는 분야는 발효유 제품이다. ‘도마슈노·엔요·구트’ 등 대여섯 가지 상표를 관리한다.
△하실골 대신 ‘하설골’로 불리고 있는 ‘하설산’ → 하실골 대신 ‘하설골’로 불리는 ‘하설산’
△하나님이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 ~ 아십니까?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자금이, 선전에 능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관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기름으로 떼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자금을 대고 있는 프로그램에 같이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제공하고 있는 자금조차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제공하는 원조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 → 미국이 제공하는 이 자금이, 선전에 능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주관하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기름으로 떼돈을 버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자금을 대는 사업에 같이 쓰이는 까닭에 미국이 주는 자금조차 쿠바나 베네수엘라가 주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순조롭게 반등하는 듯했던 주식시장이 이번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외국인 매도가 점진적으로 안정을 찾아갈 것으로 보여 1300선에 대한 신뢰는 유효하다는 판단이다 → 순조롭게 반등하는 듯했던 주식시장이 이번주 들어 부진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부담으로 작용하는 외국인 매도가 ~.
△인기를 끌고 있다, 주장하고 있다, 잡아놓고 있다,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인기를 끈다. 주장한다, 잡아놨다, 봇물처럼 넘친다.
△기존에 가입하고 있는 금융상품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 이미 가입한 금융상품을 다시 짜야 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2006/09/01 한겨레
들여다-보다 「동사」
【…을】
「1」 밖에서 안을 보다.
⸱방 안을 들여다보다.
⸱창 안을 들여다보는 게 누구야!
「2」 가까이서 자세히 살피다.
⸱책상에 놓인 사진을 들여다보다.
⸱떨어진 동전을 찾느라 연못 속을 들여다보았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12시가 넘었다.
⸱밤낮 거울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밥이 나오니?
「3」 어디에 들러서 보다.
⸱입원 중인 친구를 들여다보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아들을 들여다보았다.
바라-보다 「동사」
【…을】
「1」 어떤 대상을 바로 향하여 보다.
⸱정면을 바라보다.
⸱불러도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뛰어라.
⸱왜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니?
⸱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삼촌의 냉랭한 말을 들으며 아버지는 한동안 삼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김원일, 노을≫
「비슷한말」 바라다보다
쳐다-보다 「동사」
【…을】
「1」 위를 향하여 올려 보다.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다.
⸱단상 위의 교장 선생님을 쳐다보다.
「2」 얼굴을 들어 바로 보다.
⸱창밖을 쳐다보다.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하다.
⸱버스 안의 손님들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3」 어떤 대상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바라보다.
⸱없는 살림에 남편만 쳐다보고 살 수 없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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