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엔간해서는 맞히기 힘든 문제
다음 중 바른 표현을 골라 보세요.
1) 왠간하면 돕고 싶지만 워낙 쪼들려서 그럴 수 없네.
2) 그 녀석 웬간해서는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
3) 기침이 엥간하다 싶었는데 찬바람이 부니 다시 도지는걸.
4) 우리 몸은 엔간한 변화엔 적응할 수 있게 돼 있다.
아마도 4번을 고른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정답은 4번. 온라인이나 뉴스, 책 등에 등장한 빈도를 조사해 보니 ‘왠간하다’ ‘엔간하다’ ‘엥간하다’ ‘웬간하다’ 순으로 많이 쓰이고 있었다. 그것도 ‘왠간하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4번 ‘엔간하다’를 사투리로 알고 있거나 ‘웬만하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엔간하다’는 ‘대중으로 보아 정도가 표준에 꽤 가깝다’는 뜻을 지닌 표준어다. ‘엔간하다’가 바른 표현이므로 활용형 역시 ‘왠간히’ ‘웬간히’ ‘엥간히’가 아니라 ‘엔간히’라고 해야 한다.
발음이나 의미가 비슷한 ‘웬만하다’가 자주 쓰이다 보니 ‘웬간하다’를 바른 표현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웬간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표현이다. 즉 틀린 말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엔간하다’는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말인 ‘어연간하다’에서 나온 것이다. ‘어연간하다’와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로는 ‘어지간하다’가 있다. ‘어지간하다’를 ‘에지간하다’고 발음하고 그렇게 표기하는 이도 있지만 ‘에지간하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정리하면 ‘엔간하다’ ‘웬만하다’ ‘어지간하다’ ‘어연간하다’가 바른 표현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엔간-하다 「형용사」
대중으로 보아 정도가 표준에 꽤 가깝다.
⸱형편이 엔간하면 나도 돕고 싶네만 나도 워낙 쪼들려서 그럴 수 없네.
⸱그 녀석 엔간해서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엔간한 일이면 내가 자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네.
⸱그 풍신 그 붓 재주에, 사주만 엔간하게 타고났더라도 양반 댁 식객(食客) 되어 선비 시늉으로 행세하지….≪이문구, 오자룡≫
「본말」 어연간하다
엔간-히 「부사」
대중으로 보아 정도가 표준에 꽤 가깝게.
⸱늦어도 엔간히 늦어야지, 이렇게 한 시간이나 늦게 오면 어떡하니?
⸱두 사람 모두 엔간히 술에 취한 듯 걸음걸이가 비틀거렸다.
⸱엔간히 꼬장꼬장 물으시네.≪윤흥길, 묵시의 바다≫
「본말」 어연간히
웬만-하다 「형용사」
「1」 정도나 형편이 표준에 가깝거나 그보다 약간 낫다.
⸱먹고살기가 웬만하다.
⸱그 학생은 평소 성실했으며, 성적도 웬만한 학생이었다.
⸱금년 농사지어서 걷어 들인 것이 웬만하거든 집칸부터 마련하게.≪송기숙, 녹두 장군≫
「2」 허용되는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
⸱젊은 사람들이 웬만하면 참아요.
⸱웬만하거든 늙은 것이니 장쇠 아비를 놓아주게나.≪박종화, 임진왜란≫
⸱동네에서는 웬만해서 범돌네와 품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한수산, 유민≫
⸱공 노인께서 웬만했으면 부탁을 했겠습니까?≪박경리, 토지≫
어지간-하다 「형용사」
「1」 수준이 보통에 가깝거나 그보다 약간 더하다.
⸱국어 성적은 어지간하게 올랐으니 이젠 수학 성적에 신경 좀 써라.
⸱인물도 어지간하고 성격도 무난해서 사윗감으로 승낙했네.
⸱농을 곧잘 하고 눈치도 어지간한 사람이오.
⸱일본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다 보니 어지간한 일본 말은 알아들을 만하다.
⸱너희 가문이 어지간하니까 우리 집 출입을 허락하고 있는 거야.≪서기원, 마록 열전≫
「비슷한말」 어연간하다
「2」 정도나 형편이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아니한 상태에 있다.
⸱어지간하면 네가 참아라.
⸱그 사람에게 간곡히 부탁하면 어지간한 일 정도는 대개 들어준다.
⸱팔방으로 돌아다닐 때는 물론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어지간해서는 웃지도 않던 남편이 오늘따라 저렇게 웃어 대는 걸 듣는 마음은 기쁘고도 허허로웠다.≪최일남, 거룩한 응달≫
「3」 생각보다 꽤 무던하다.
⸱너는 성격이 어지간하니까 잘 참을 것이다.
⸱황이 너무 몰아대니까 어지간한 김 형도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이문열, 변경≫
「4」 성격 따위가 생각보다 심하다.
⸱우리 어머니도 어지간하거든. 내가 졌지 뭐.≪박경리, 토지≫
⸱제때 되면 어련히 올까 봐 그리 안달이시오. 아무튼 아주머니도 어지간하시오.≪최일남, 타령≫
⸱산길을 맨발로 오다니 어지간한 놈이로구나.≪이병주, 지리산≫
어연간-하다 「형용사」
‘엔간하다’의 본말.
⸱그 정도면 어연간하게 되었으니 가 쉬어라.
⸱어연간하면 허락해 주시지요.
「비슷한말」 어지간하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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