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파랗게 개인(?) 하늘
말복이 지난 지도 한참이나 됐지만 여전히 덥다. 가끔씩 하늘이 깜깜해지고 지역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금방 파랗게 ‘개인’ 하늘에서는 다시 태양이 불볕을 퍼붓는다. 맑은 날보다는 우중충하게 구름 낀 날이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위에서 ‘개인 하늘’이라고 쓰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란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개이다’가 아니라 ‘개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갠 하늘’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인기 있는 가요나 예술 작품에 어문규정에 맞지 않는 구절이 들어갈 경우 쉽게 확산되는데 이 경우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제목이 ‘어떤 개인 날’로 번역된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어서 틀리기 쉬운 표현들을 몇몇 더 찾아보자. 예전 시골집들은 짚을 엮어 지붕을 덮은 곳이 많았다. 짚 외에도 부유한 집에서는 기와를 썼고, 산촌 등에서는 얇은 돌이나 나무 조각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재료로 지붕을 올리는 일을 표현할 때 ‘굴피/기와/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지붕을 인 집’이라고 해야 바르다. ‘기와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덮다’란 뜻의 단어는 ‘잇다’가 아니라 ‘이다’이며 ‘이고, 이어, 이니, 인’ 등으로 활용하므로 ‘이은’이 아니라 ‘인’이 옳다. ‘강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갈대로 지붕을 잇고’ ‘사당 문을 고치고 지붕을 새로 이으니’ 같은 표현도 ‘갈대로 지붕을 이고’ ‘지붕을 새로 이니’라고 해야 한다.
“시간 되면 우리 회사에 잠깐 들렸다가 가세요”처럼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란 뜻으로 ‘들리다’를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때도 ‘들르다’가 바른 표현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니, 들러서, 들르면’으로 활용하므로 ‘들렸다가’가 아니라 ‘들렀다가’로 해야 한다. “우리 집에 들리면 제 소식 좀 전해 주세요”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려서 이 편지 좀 부쳐 줘”의 경우도 ‘우리 집에 들르면’ ‘우체국에 들러서’로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김형식 기자
[우리말 톺아보기] 하늘을 날으는 원더우먼?
40대 이상은 ‘날으는 날으는 원더우먼’으로 시작하는 미국 드라마 주제가를 기억할 것이다. ‘원더우먼’은 최근에 다시 영화로도 만들어져 요즘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다. 사실 원더우먼은 슈퍼맨처럼 스스로 하늘을 날지는 않는다. 투명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투명’하다 보니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날으는’이 아니라 ‘나는’이 맞는 표기인데, 노랫말에 ‘나는’ 대신에 ‘날으는’을 쓴 경우는 이 외에도 꽤 있다. 맞춤법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박자를 맞추려고 일부러 쓴 경우도 있는 듯하다. 사실 노랫말이나 시, 상품명 등은 창작물에 속하기 때문에 맞춤법에 예외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흔히 ‘시적 허용’이라고 부르는 것의 확대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까지 맞춤법의 잣대를 대서 고치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랫말로 허용됐다고 해서 그것을 맞는 표기로 허용한 것은 아니기에, 노래나 광고로 맞춤법을 익히는 것은 위험하다.
‘날으는’이 아니라 ‘나는’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말에서 어간이 ‘ㄹ’로 끝나는 동사나 형용사가 독특하게 활용을 하기 때문이다. ‘날다’, ‘놀다’, ‘저물다’와 같은 말은 어간 ‘날-’, ‘놀-’, ‘저물-’에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면 어간의 ‘ㄹ’이 탈락한다. 그래서 ‘놀으는 아이들’, ‘저물으는 해’가 아니라 ‘노는 아이들’, ‘저무는 해’가 되는 것이다. 특정한 어미와 결합할 때 어간의 일부가 탈락하는 것으로는 ‘잠그다’와 같은 말도 있다. ‘잠그다’, ‘담그다’와 같이 어간이 ‘ㅡ’로 끝나는 말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면 ‘ㅡ’가 탈락하여 ‘잠가’, ‘담가’가 된다. 이것을 ‘잠궈’, ‘담궈’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끼어들기'와 '끼여들기' 중 맞는 표기는?
'끼어들기'가 맞습니다. '끼어들기'는 자주 '끼여들기'와 혼동하여 쓰는데, 이는 발음이 [끼어들기]로 또는 [끼여들기]로 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발음에 잘못 이끌려 '끼여들기'로 적는 것입니다. '끼어들기'는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서는 일'이란 뜻으로, 능동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끼다'의 피동사 '끼이다'가 쓰인 '끼여들기(끼이어들기)'는 어법에 맞지 않은 말입니다.
* 슈퍼맨은 '날으는' 것입니까, '나는' 것입니까?
'슈퍼맨은 나는' 것입니다. 국어에는 어간의 끝소리인 'ᄅ'이 '-ᄂ, -ᄇ니다, -오-, -시-' 앞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있는데, 이것을 '리을 불규칙 활용'이라고 합니다. 'ᄅ'을 받침으로 가진 동사 '놀다'의 경우 '놀다, 놀고, 놀지, 놀면'에서와 같이 '-다, -고, -지, -면'으로 된 어미 앞에서는 'ᄅ'이 유지되는 데 반하여, '노니, 노느냐, 논, 놉니다, 노오, 노시고'와 같이 '-ᄂ, -ᄇ니다, -오, -시-'로 된 어미 앞에서는 'ᄅ'이 탈락하게 됩니다. '날다' 역시 'ᄅ'을 받침으로 가진 용언이므로 '날다, 날고, 날지, 날면'에서는 'ᄅ'을 유지한 형태로, '나니, 납니다, 나오, 나시오'에서는 'ᄅ'을 탈락한 형태로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날으는 슈퍼맨'은 '하늘을 나는 슈퍼맨'으로 고쳐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 '너머'와 '넘어'는 어떻게 다릅니까?
'너머'는 '높이나 경계로 가로막은 사물의 저쪽. 또는 그 공간'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로, '고개 너머, 저 너머'에서처럼 공간이나 공간의 위치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넘어'는 동사 '넘다'에 어미 '-어'가 연결된 것으로 '국경을 넘어 갔다, 산을 넘어 집으로 갔다'에서처럼 동작을 나타냅니다. 즉 '산 너머'는 산 뒤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고, '산 넘어'는 산을 넘는 동작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글 맞춤법 제19항 [붙임]에 보면 "어간에 '-이'나 '-음'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품사로 바뀐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명사로 된 '귀머거리, 까마귀, 너머, 뜨더귀, 마감, 마개' 등은 원형을 밝혀 적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나타내는 '너머'의 경우도 원래는 '넘다'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기는 하지만 제19항에 적용되는 예로 원형을 밝혀 적지 않습니다.
* '네'와 '예' 중 어느 것이 맞습니까?
대답하는 말 '네/예'는 표준어 규정 제18항에 복수 표준어로 되어 있습니다. 1988년 이전에는 '예'만을 표준어로 인정하였으나 서울말에서는 오히려 '네'가 더 보편적으로 쓰여 왔고 또 쓰이고 있으므로 복수 표준어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네'와 '예'의 의미 차이가 없으므로, '숙제 다 했니?'라는 질문에 '네'나 '예'로 모두 대답할 수 있습니다.
출처 우리말 배움터
개다1 「동사」
「1」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
⸱날이 개다.
⸱비가 개다.
⸱날씨가 활짝 개다.
⸱아침부터 오던 눈이 개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2」 (비유적으로) 언짢거나 우울한 마음이 개운하고 홀가분해지다.
⸱기분이 개다.
⸱네가 그렇게 위로를 해 주니 내 마음이 좀 개는구나.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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