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불은 라면
"라면을 끓일 때 면보다 수프를 먼저 넣고 끓이면 면이 익는 시간이 좀 더 짧아져 면발이 쫄깃하고 덜 불은 라면이 된다" "예전 군대에서는 일요일 아침마다 밥 대신 퉁퉁 불은 라면이 나왔다"에서처럼 쓰이는 '불은'의 기본형은 무엇일까. '불다' 또는 '붓다'로 대답하기 쉽지만 '붇다'가 기본형이다.
'불다'는 바람이 일어나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다("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그 사이로 숨을 내쉬어 소리를 내다("휘파람을 불었다"), 숨겼던 죄나 감추었던 비밀을 사실대로 털어놓다("죄를 숨김 없이 불어라") 등의 뜻으로 쓰인다.
'붓다'는 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거나 성이 나서 뾰로통해지다("편도선이 붓더니 임파선까지 부었다" "친구가 기다리다 지쳐 잔뜩 부어 있었다"), 액체나 가루 따위를 다른 곳에 담다("가마솥에 물을 붓다"), 이자‧곗돈 따위를 일정한 기간마다 내다("은행에 적금을 붓다")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붇다'는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오래돼 불은 국수는 맛이 없다"),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체중이 많이 불었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럼 "재산이 ㉠불는 ㉡붓는 ㉢붇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른다"는 어느 것이 맞을까. '㉢붇는'이 맞다.
2007/09/06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이유 있는 ‘붇다’의 변신
국지성 집중호우가 잦은 올여름. “개울물이 불기 전에 야영객을 긴급 대피시켰다” “강물이 더 불면 댐 수문을 열어 물을 방류할 계획이다” 등의 소식을 자주 접한다.
이때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는 의미로 ‘불기’ ‘불면’이란 말을 흔히 사용하지만 ‘붇기’ ‘불으면’으로 바루어야 한다. ‘불다’가 아니라 ‘붇다’가 기본형이다. ‘붇다’에 ‘-기’가 붙으면 ‘붇기(붇+기)’, ‘-으면’이 붙으면 ‘불으면(붇+으면)’으로 바뀌는 ‘ㄷ불규칙활용’을 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ㄷ불규칙활용은 어간 말음인 ‘ㄷ’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ㄹ’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자음 앞에서는 받침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ㄷ’을 쓴다. ‘붇기, 붇고, 붇는, 붇지, 불으면, 불은, 불어서, 불으니’ 등과 같이 활용된다.
이 ‘붇다’와 헷갈리는 말이 불입금·이자·곗돈 등을 일정한 기간마다 내다는 뜻의 단어 ‘붓다’이다. “재산이 붇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바르게 쓰였지만 “적금은 붇고 있니?”라고 해서는 안 된다. ‘붓고’라고 고쳐야 맞다. “면발이 붇다”와 “다리가 붓다”의 경우도 혼동하기 쉽다. 물에 젖어 부피가 커지는 건 ‘붇다’, 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는 건 ‘붓다’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말바루기] 적금을 붇다(?)
2007년 10월 31일. 당시 중국 펀드는 연일 수익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늦게라도 올라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중국 펀드에 돈을 넣었다. 2008년 4월 14일 현재 성적은 수익률 약 -30%. 펀드가 아니라 차라리 적금을 차곡차곡 ‘붇는’ 게 나았을까.
머리가 복잡해지는 건 중국 펀드를 생각했을 때만이 아니다. ‘붓다’와 ‘붇다’를 구별해 쓰려니 머릿속이 어지러워진다. 흔히 위에서와 같이 “적금을 붇다”라고 쓰는 경우가 많지만 ‘불입금·이자·곗돈 따위를 일정한 기간마다 낸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는 ‘붇다’가 아닌 ‘붓다’이다.
그렇다면 “재산이 불어나다”와 같이 ‘분량이나 수효가 많아지다’는 의미의 단어는 무엇일까. “재산이 붇는 재미에 힘든 줄 모른다”에서와 같이 ‘붇다’로 써야 바르다. 이렇게 정리하자. 적금은 붓고, 재산은 붇는다.
‘붓다’와 ‘붇다’가 헷갈리는 때가 또 있다. “라면이 붇다”와 “얼굴이 붓다”의 경우다. 물에 젖어 부피가 커지는 건 ‘붇다’, 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는 건 ‘붓다’이므로 “라면이 붇기 전에 먹고 바로 잤더니 얼굴이 붓고 푸석푸석하다”와 같이 써야 한다.
직장인은 적금을 붓고 재산이 붇는 걸 보면 절로 흥이 난다. 잘 부은 적금으로 불은 재산을 지키지 못하는 일이 없으시길!
2008/04/1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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