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열사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자주민주통일 진군 49” 오원택 열사(1973-1995)

들꽃 호아저씨 2022. 11. 17. 13:4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베니스산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 Venise 1711
Les six suites pour violoncelle de JS Bach, interprétées par
https://www.youtube.com/watch?v=4l5Ef8hMXEg

 

▲ 오원택 열사(1973-1995)

오원택 열사(1973-1995) : 1992년 경기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입학해 헌신적인 학교생활을 하였다. 2학년 때는 혼자서 6개의 학생회 각 단위 부서 연석회의를 참가하고 매일 학생회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미제 식민지 조국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진실한 삶을 살아 나가려고 노력했고, 학우 대중을 만나 이야기하며 학우와 함께 조국을 생각하는 청년이었다. 1993년 경기대학교 서울에 있는 공대를 수원으로 이전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울 학교를 폐쇄하려던 사학비리 주범 손종국과 재단에 맞서 앞장서서 투쟁하였다. 1993년 9월 21일 모리배로 대변되는 재단에서 사주한 유도부의 야구방망이에 맞아 부상을 당했고, 이후 심한 후유증을 앓았다. 1995년 1월 군 입대 후 3월 17일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으며 국립 대전현충원에 잠들었다.

 

- 출처 : 오원택열사추모사업회 / 민주화운동기념회 참고

 



▲오원택 열사 글 / ⓒ 열사회보

 

 

오원택 열사 글에서


자주민주통일 진군 49년(199년) 10월 20일 수요일

올해도 저물어가고 겨울도 다 지쳐가고 낯짝은 인자 살아나고 내 心身(심신)들도 살아나고, 나의 쉼터도 살아나고 외로운 병실이었다. 만 20일 동안 가끔 다가와주는 동지들이 있었기에 살아날 수 있었지만 병실을 뛰쳐나와 돌아온 교정 그리고 두 달만에 돌아간 고향, 반가운 사람들. 그래도 다쳤다고 병원에 자빠져 있었다고 사람대접 해 주더만.

(······)

오늘은 서울 수원 연대집회 있는 날곧 출발해야 헌디 사람들 꼴이 별로 안뵌다. 오늘 투쟁 일궈내서 내일은 꼭 국회 접수 해얀디. 경기 학원 문제에 결의 의지를 극명해얀디기나긴 올해 학원 자주와 투쟁의 마무리를 야물게 해얄것인디그리고 올해 승리를 발판으로 민족사학 건설에 박차를 가해얀디지금 출발헌 단다.

더 써야 씨것는디. 어찌것냐. 대의를 위함인디. 우리의 경기를 조국을 위해선디.

 

* 49년 10월 20일 수요일 (1994년이지만 그는 분단 49년 해방 49년이라는 의미로 연력을 “자주민주통일 진군 49”라 사용했다.)



오원택 열사 유고 글

낙서장에

그래도 내가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에 미제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았기에 미제를 몰아내기 위한 투쟁이 내 어깨에 지워져 있기에 학우 대중들이 존재하기에 나와 함께 투쟁의 한 길로 가야 할 학우들이 있기에 이러한 이유들이 있기에 식민지 조국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내 삶을 구가하고 잘 살아 나가려고 몸부림치고 학우 대중을 만나 이야기하며 술을 구가한다.

 

- 추모비에 쓰인 내용 : 1994년 5월 22일 날적이 중에서  / 출처 : 오원택열사추모사업회 / 민주화운동기념회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