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수많은 어둠들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앉아 있을 테지, 벗겨도 벗겨도 끝내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그런 것이다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