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머지않아, 멀지 않은 곳에서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다르다'와 '틀리다'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말에는 쓰임새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말이 좀 있는데, 이걸 잘 구별하지 못하면 품위 있는 말글살이를 할 수가 없다.(외국말도 그런가?) 말글살이의 품위는 바로 그 말을 쓰는 사람의 품위. 그러니 '다르다'고 해야 할 자리에 '틀리다'를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틀린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인간배아 줄기세포' 혈관치료 멀잖다>
어느 신문의 제목인데, '멀잖다'는 틀렸다. '머지않다'를 써야 했다.
'멀잖다, 머지않다'는 비슷한 것 같지만 둘은 겉과 속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먼저 겉. '멀잖다'는 '멀지않다'가 줄어든 말인데, 이는 '멀다+않다'의 구조로 이뤄진 구의 형태이므로 '멀지 않다'로 써야 한다. 반면 '머지않다'는 한 단어이니 붙여 쓴다.
다음은 속. '머지않다'는 '시간적으로 멀지 않은 시점'을 뜻한다. 반면 '멀지 않다'는 '공간적인 개념'을 나타낸다.
그러니 '인간배아 줄기세포 혈관치료'는 '머지않다'로 써야 제대로였던 셈. 하여튼, '머지않은 때에, 멀지 않은 곳에'로 외우면 헷갈리지는 않겠다.
'귀하/귀중'도 어지간히 헷갈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표기도 가끔 보인다.
'아무개 선생님 귀중/부산일보사 귀하'
하지만 '귀하'는 '편지 글에서, 상대편을 높여 이름 다음에 붙여 쓰는 말'이고 '귀중'은 '편지나 물품 따위를 받을 단체나 기관의 이름 아래에 쓰는 높임말'이다. 즉 '귀하'는 사람, '귀중'은 기관이나 단체 이름 아래에 써야 한다. 그러니 '아무개 선생님 귀하/부산일보사 귀중'이라야 하는 것.
그런데 '선생님'과 '귀하'는 중복 높임이고, '부산일보사 귀중'도 요즘 표현으로는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 쓰면 어떤가.
'아무개 선생님께/부산일보사 앞'
쉬우면서도 정확한 말을 쓰면 한결 돋보이게 마련이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이는 요즘이 아닌가.
2007/11/27 부산일보
[기자도 헷갈리는 우리말]머지않아, 멀지 않아
'시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뜻으로 '머지않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주로 '머지않아'의 꼴로 쓰이며 한 단어이므로 붙여 씁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얼마 머지않은 곳에서 태어난'이나 '머지 않은 미래에'라는 표현은 틀린 것입니다. '머지않다'는 실제 문장에서 '머지않은 장래에 등장할 지정학적 재편에 대한 논의'나 '머지않아 자치단체 간 우열이 확연하게 구분될 것' 등의 형태로 쓰입니다.
그럼 공간적으로 멀지 않다는 뜻을 가진 말은 없을까요? 이때는 시간과 거리 개념을 모두 갖고 있는 '멀다'에 부정을 뜻하는 '않다'를 붙여서 '멀지 않다'를 쓸 수 있습니다. 단 '멀지 않다'는 '머지않다'와 달리 한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서 써야 합니다. 이 표현은 '현란한 비보잉을 마음껏 뽐낼 날도 멀지 않은 셈'이나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등으로 쓰입니다.
'머지않다'와 '멀지 않다'의 예문을 들어 알아보겠습니다.
ㄱ.머지않아 세계는 4개 정도의 최강 기업만 살아남는 형태로 FPD산업 판도가 재편될 것으로 예측된다.
ㄴ.최근의 집값 급등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가 점차 감소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주택 수요도 줄어들 것이란 전망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아이러니하다.
ㄷ.영월이면 고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데다 서울에서도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었다.
ㄹ.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당일 코스로 단풍놀이 가기에 좋다.
2006/12/05 머니투데이
우리말 바루기 290 - 머지않아/멀지 않아
꿈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가난에 갇혀 내일을 꿈꾸지 못하는 아이들. 그들에게 교육과 복지의 기회를 주자는 `We Start(위 스타트)`운동이 시작됐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서지 않으면 `머지않아` 미래의 희망을 지켜주지 못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머지않아`는 `머지않다`의 부사어로 `시간적으로 오래 걸리지 않아`라는 뜻이다. 이와 비슷한 형태로 `멀다`에 `않아`가 붙어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로 쓰이는 `멀지 않아`가 있다. 이 둘은 상황에 따라 구별해 써야 하는 말인데 잘못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두 명의 동생은 학교에 다니지만 그들도 멀지 않아 일거리를 찾아야 할지 모른다" "축구를 즐기며 성장한 유소년 클럽 선수들은 멀지 않아 한국 축구의 동량으로 자랄 것이다" "멀지 않아 헌재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다" 등의 문장에서 `멀지 않아`는 잘못 쓰인 예다. `가까운 미래`를 말하는 것이므로 `머지않아`로 고쳐야 바른 문장이 된다.
"최고 부자들이 산다는 타워팰리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판자촌이 있다" "시청 앞 서울광장은 명동에서 멀지 않아 걸어서 갈 수도 있다" 등의 문장은 바르게 쓰인 예다.
즉 `머지않아`는 시간적 개념을, `멀지 않아`는 공간적 개념을 나타낼 때 쓴다고 이해하면 쉽다. 또 `머지않아`는 한 단어로 붙여 쓰지만 `멀지 않아`는 한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다.
2004/05/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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