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안갯속에 ‘쌓인’ 선거라고요?
서울과 부산시장을 뽑는 재·보궐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으레 많이 나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선거의 향방이 아직까지도 베일에 ‘쌓여/싸여’ 있다” “선거 결과는 안갯속에 ‘쌓여/싸여’ 있는 상황이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이럴 때 ‘쌓여’와 ‘싸여’ 가운데 어느 것을 써야 할지 헷갈린다.
‘쌓여’를 고른 사람이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싸여’가 맞는 말이다. ‘쌓여’는 ‘쌓이다’를 활용한 말이고, ‘싸여’는 ‘싸이다’를 활용한 말이다. ‘쌓이다’는 여러 개의 물건을 포개어 얹어 놓는다는 뜻을 가진 ‘쌓다’의 피동사다. “책상에 먼지가 엄청 쌓여 있었다” “발밑에는 옷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처럼 쓸 수 있다. “수양이 쌓인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그 둘 사이에는 나날이 신뢰가 쌓여 갔다” 등에서와 같이 경험·기술·지식·재산·명예·신뢰 등이 많아지는 경우에도 ‘쌓이다’를 쓴다.
‘싸이다’는 “포장지에 싸인 선물” “보자기에 싸인 음식” 등에서처럼 물건이 보이지 않게 씌워져 가려지거나 둘려 말린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쓰인다. “신비에 싸인 원시림” “수심에 싸인 표정을 짓고 있다” “슬픔에 싸여 있다” 등에서와 같이 어떤 분위기나 상황에 뒤덮이는 경우에도 ‘싸이다’를 사용할 수 있다.
정리하면 ‘차곡차곡 포개지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쌓이다’, ‘뒤덮이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 ‘싸이다’를 쓰면 된다. 선거와 관련한 서두의 예문도 불확실성에 뒤덮여 있는 경우이므로 ‘베일에 싸여 있다’ ‘안갯속에 싸여 있다’가 맞는 말이다.
김현정 기자http://nomadicwriter@naver.com
쌓-이다 「동사」
1 【…에】
여러 개의 물건이 겹겹이 포개어 얹어 놓이다. ‘쌓다’의 피동사.
⸱책상에 먼지가 쌓이다.
⸱발밑에는 옷이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안정효, 하얀 전쟁≫
2
「1」 물건이 차곡차곡 포개어 얹어져 구조물이 이루어지다. ‘쌓다’의 피동사.
⸱쉬지 않고 벽돌을 올리자, 담은 점점 높이 쌓여 갔다.
「2」 밑바탕이 닦여서 든든하게 마련되다. ‘쌓다’의 피동사.
⸱학문의 기초가 쌓임에 따라 그는 공부하는 데 점점 재미를 느꼈다.
「3」 경험, 기술, 업적, 지식 따위가 거듭 익혀져 많이 이루어지다. ‘쌓다’의 피동사.
⸱수양이 쌓인 만큼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십 년 동안 쌓인 그 경험이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4」 재산, 명예 또는 불명예, 신뢰 또는 불신 따위가 많아지다. ‘쌓다’의 피동사.
⸱금고에 돈이 쌓여도 근심이 끊일 날이 없다.
⸱그 둘 사이에는 나날이 신뢰가 쌓여 갔다.
3 【…에/에게】
하여야 할 일이나 걱정, 피로 따위가 한꺼번에 많이 겹치다.
⸱친구에게 빚이 쌓이다.
⸱가슴속에 걱정이 쌓이면 병이 된다.
⸱할 일이 태산같이 쌓였다.
⸱남편의 눈꺼풀 위에 피로가 덮개를 이루듯 쌓여 있다.≪조세희, 칼날≫
싸-이다1 「동사」
1 【…에】【 …으로】
「1」 물건이 보이지 않게 씌워져 가려지거나 둘려 말리다. ‘싸다’의 피동사.
⸱보자기에 싸인 음식.
⸱그녀는 고운 포장지에 싸인 조그만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이문열, 그해 겨울≫
⸱도시락은 예쁜 보자기로 싸여 있었다.
⸱나는 신문지로 싸여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
「2」 주위가 가려지거나 막히다. ‘싸다’의 피동사.
⸱안개에 싸인 시골 마을.
⸱마를 대로 마른 무대는 화염에 싸이고 불길은 넘실거리며 기둥으로 옮겨붙고 있었다.≪한수산, 부초≫
⸱사면이 바다로 싸인 섬.
2 【…에】
헤어나지 못할 만큼 어떤 분위기나 상황에 뒤덮이다.
⸱신비에 싸인 원시림.
⸱슬픔에 싸이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안 계실 때보다도 더 수심에 싸인 표정을 짓고 다녔다.≪최일남, 거룩한 응달≫
3 【…과】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리다.
⸱동네 아이들과 싸여 놀다.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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