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목동이 아직 거기 있을 때 내 눈에 콩깍지가 끼어 571번 버스 휑하니 먼지 일으키며 지나가는 그곳 여인숙 잠 많이 잤다. 밤새도록 창살에 달라붙어 울어제끼는 엉머구리떼 울음 떨쳐내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 골목길에 나서면 아, 어느 집 양철대문 안에 소담스럽게 피어 있던 목련꽃들.
콩깍지가 끼어→콩깍지가 씌어
울어제끼는→울어 젖히는, 울어 대는
엉머구리떼(참개구리 떼)
[우리말 바루기] 콩깍지가 씌다
수많은 사람 중에 그녀밖에 안 보이고, 멀리서도 그녀의 목소리만 들리고, 김태희보다 그녀가 더 사랑스럽다고 한다면? 그의 눈엔 콩깍지가 씐 걸까, 쓰인 걸까, 씌운 걸까.
‘콩깍지가 쓰인’ ‘콩깍지가 씌운’이라고 표현해선 안 된다. “그의 눈에 콩깍지가 씐 거군요”라고 답해야 어법에 맞다.
이때의 ‘씌다’는 ‘쓰이다’나 ‘씌우다’의 준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의 자동사다. “술을 마시면 이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콩깍지가 쓰인다(씌운다)’는 속설은 사실일까?”와 같이 표현하는 건 잘못이다. ‘씐다’로 고쳐야 한다. ‘씌고/씌니/씌면/씌어서’처럼 활용된다. 불필요한 ‘-이-’를 넣어 ‘씌인/씌이다/씌였다’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지만 기본형이 ‘씌다’이므로 ‘씐/씌다/씌었다’로 사용하는 게 바르다.
‘눈에 콩깍지가 씌다’ 대신 ‘눈에 콩 꺼풀이 씌다’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콩 꺼풀’은 한 단어가 아니므로 띄어 써야 한다. 콩깍지든 콩 꺼풀이든 앞이 가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동사는 ‘씌다’이다.
귀신 따위에 접하게 되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씌다’를 쓴다. “귀신이 쓰였다(씌웠다)”처럼 활용해선 안 된다. ‘씌었다’로 바뤄야 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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