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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역사는 미루지 않고, 선도적으로 실천하는 자만을 알맹이로 한다” : 이재호 열사(1964-1986)

들꽃 호아저씨 2021. 11. 3. 07:24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베니스산 마테오 고프릴러Matteo Goffriller, Venise 1711

Les six suites pour violoncelle de JS Bach, interprétées par 

https://www.youtube.com/watch?v=4l5Ef8hMXEg

 

▲ 이재호 열사(1964-1986) :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 1986년 5월 26일 운명하였다

 

 

 

이재호 열사 영전에  /  문병란

 

산 자도 죽은 자도 사랑했던 광주

그 이름 부를 량이면

벌써 우리들의 혀가 말린다

이재호 열사,

그대 이름 부를 량이면

어른들은 모두 다 부끄러워진다

그대를 누가 죽게 했는가?

민중이 덫이 된 이 나라의 정치제도,

권력에 의한 권력을 위한 권력의 정치,

살인자가 된 가식의 민주주의가

그대의 꽃다운 청춘,

그대의 빛나는 이상을 앗아갔구나

광주를 연인처럼 사랑했던 젊은이

피투성이 금남로와 망월동을 안고

밤마다 몸부림치며 잠 못 이루었던

이 나라의 아름다운 순정의 사나이

그대는 앞서간 임들의 뒤를 따라

끝내 찬란히 산화하고 말았구나

이재호 열사, 그대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부끄러운 어른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죽였고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장관이란 이름으로

더구나 대학교수 총장이란 이름으로

우리들은 모두 공범이 되어

그대 순결한 청춘을 살해하였구나

수많은 책의 페이지를 메꾸었던 거짓 진리

혓바닥과 펜으로 그대를 죽였고

썩은 권위로, 질서를 빙자한 폭력으로,

평화를 가장한 선린우호의 침략으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모진 비수를 박는

살인적 휴머니즘으로 피를 빠는 흡혈의 도덕으로

작은 한반도를 도막 내는 제국의 각축장

이 나라는 도마 위에 올려놓은  살코기가 되었구나

장한에 둘러싸인 가냘픈 미인이 되었구나

그대, 이재호 열사,

빈사에 놓인 조국, 피투성이 광주를 구해야 된다

캄캄한 한반도의 한밤중을 절규하던 목소리,

공부 잘하면 무엇 하는가?

후배 목이나 옭아매는 검사 판사 되면 무엇 하는가?

그대 자랑스러운 317점의 고득점

이 나라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서울대 학생

그러나, 그러나, 공부 잘하여 출세하면 무엇 하는가?

민주주의 방해하는 법무장관,

통일 방해하는 통일원 장관,

농민 목을 조이는 농림부 장관,

민의를 짓밟은 국회의원,

서울대학 졸업하여 출세하고 돈 벌면 무엇 하는가?

그대, 이재호 열사,

그 많은 영광, 그 많은 꿈, 그 많은 자랑스러운

아크로폴리스의 낭만을 한 줌 재로 남기고

그대의 프라이드를 광주에 되돌려 주었구나

그대의 정열을 금남로에 피 뿌려 주었구나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

서울대학의 반민중적 반동을

지식인들의 빈 지식인적 배신을

산 자들의 무기력 산 자들의 기득권적 매국을

그대 한 몸 불태워 우리 대신 속죄하였구나

우리 대신 민족의 원죄 대속하였구나

이재호 열사,

누가 헛된 가식의 찬미 뇌까리는가?

아직 우리에겐 천국이 없고

아직 우리에겐 편히 누울 무덤이 없다

원수의 군화가 짓밟고 있는 땅

어디다 꽃다발을 바치며

어디다 묘비명을 세우랴

죽어, 거듭 죽어

천 번을 죽을지라도

광주와 더불어 영원히 살리라

그 어느 낙원보다 천당보다 아름다운

고난의 광주를 사랑했던 그대,

온몸 횃불 되어 불 밝히고

마침내 광주에 돌아와

한 줌 흙이 되었구나

자랑스러운 망월동의 형제가 되었구나

절뚝이며 절뚝이며 돌아와

한 줌 불씨로

묻혀있는 내일의 빛나는 씨앗으로

그대는 빛나는 광주의 마음이 되었구나

영원히 살아 있는 우리들의 사람이 되었구나

죽어서도 영원히 우리들의 노래가 된

사랑스러운 우리들의 아들이여 연인이여

오 무등의 횃불 이재호 열사여.

 

* 1987년 5월 26일 이재호 열사 1주기를 맞아 문병란 시인이 쓰고 낭독한 추모시

 

-<아름다운 청년 김세진 이재호>(2007, 한울,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 엮음)

 

 

 

▲이재호 열사(1964-1986) : 분신 후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재호 열사(왼쪽) / 김세진 열사와 이재호 열사(가운데) / 이재호 열사가 운명한 지 나흘 후 1986년 5월 30일 서울대에서 이재호, 김세진(서울대 미생물학과), 이동수(서울대 농대 원예학과) 열사의 합동장례식(오른쪽)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효도는 사회에 봉사하는 의연한 삶을 개척하는 것임을 저는 믿습니다”

 

(···) 저는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물질적 봉양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효도는 첫째, 올바르게 사회에 봉사하는 의연한 삶을 개척하는 것. 둘째, ‘승리’로써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힘든 결단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현재의 생활을 지탱해주는 절대적 기초입니다. 물론 예고 없는 저의 결단으로 인한 충격에서 오는 부모님의 슬픔과 노여움에 고개를 떨구지 않을 수는 없지만 저의 생각과 행동이 결코 공허한 불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 장기적 전망과 믿음 속에서 증명되는 날 기쁨의 해후를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

(···) 오래전부터 저는 자신의 삶을 준비해왔고 비로소 드러냈다고 봅니다.

지금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봅니다. 누님과 동생들에게는 의연함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의 생활과 주변에 관계되는 것들은 스스로 해나갈 수 있으므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편지를 쓰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가까운 날짜에 다시 연락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건강히 계십시오.

 

1986년 4월 2일 저녁 12시. 서울에서 재호 올림

 

- 이재호 열사가 부모님께 드린 마지막 편지 중에서

 

 

 “고난에 찬 한국현대사는 일찍이 조선말기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민족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투쟁사는 새로운 조건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시 단절된 채 현대사의 진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서서히 떠오르는 광명을 맘으로부터 준비하듯, 역사는 그 알맹이로부터 외압의 모든 구차한 껍데기들을 과감히 쳐부수기 위한 일보를 내딛으려 한다. (···) 역사는 미루지 않고, 선도적으로 실천하는 자만을 알맹이로 한다.

 

   - 1985년 8월 15일에 쓴 이재호 열사 일기 중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_Hs6OgwSsbs

 

 

애고, 도솔천아 / 정태춘 노래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선말 고개 넘어간다

자갈길에 비틀대며 간다

 

도두리(棹頭里)벌 뿌리치고

먼 데 찾아 나는 간다

정든 고향 다시 또 보랴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이깟 행차에 흥 난다고

봇짐 든든히 쌓겄는가

시름 짐만 한 보따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길을 막는 새벽 안개

동구 아래 두고 떠나간다

 

선말산의 소나무들

나팔소리에 깨기 전에

아리랑 고개만 넘어가자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도랑물에 풀잎처럼

인생행로 홀로 떠돌아 간다

 

졸린 눈은 부벼 뜨고

지친 걸음 재촉하니

도솔천은 그 어드메냐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등 떠미는 언덕 너머

소매 끄는 비탈 아래

시름 짐만 한 보따리

 

간다 간다 나는 간다

풍우설운 등에 지고

산천 대로 소로 저자길로

 

만난 사람 헤어지고

헤진 사람 또 만나고

애고, 도솔천아

 

기차나 탈거나, 걸어나 갈거나

누가 노을 비끼는 강변에서

잠든 몸을 깨우나니

시름 짐은 어딜 가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빈 허리에 뒷짐 지고

나 나..

 

선말 고개 넘어서며

오월 산의 뻐꾸기야

애고, 도솔천아

 

도두리 벌 바라보며

보리원의 들바람아

애고, 도솔천아

애고, 도솔천아

 

* 이재호 열사가 투신 후 병원에서 의식이 있을 때 불렀던 노래

 

-<아름다운 청년 김세진 이재호>(2007, 한울,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