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열사

바흐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 안탈 살라이 - “곳곳에 잠복한 오월의 칼날, 새털복숭이로 휘어지는 소리 들리고” : 고정희

들꽃 호아저씨 2021. 12. 18. 14:53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바이올린 소나타 1번, 파르티타 1번, 소나타 2번, 파르티타 2번, 소나타 3번, 파르티타 3번 (BWV 1001~BWV 1006)

 

안탈 살라이Antal Zalai 바이올린

The Evangelical Church of Siófok, 17 October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A3vMzn5GAOg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건 진실이 다 편한 것은 아니며 확실한 것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너그러움이 다 사랑은 아니며 아픔이 다 절망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내 실존의 겨냥은 최소한의 출구와 최소한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다.

- 고정희 시인의 말에서

 

고정희(1948-1991)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 고정희(1948-1991)

 

고요하여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무심히 지나는 출근버스 속에서도
추운 이들 곁에 ​

따뜻한 차 한잔 끓는 것이 보이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여수 앞바다 오동도쯤에서

​춘설 속의 적동백 두어 송이
툭 터지는 소리 들리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쓰라린 기억들
강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고

 

울렁거려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물구나무 서서 매달린 희망

​맑디맑은 눈물로 솟아오르고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그리운 어머니
수백수천의 어머니 달려와

​곳곳에 잠복한 오월의 칼날
새털복숭이로 휘어지는 소리 들리고

눈물겨워라
너를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중국 산동성에서 돌아온 제비들
쓸쓸한 처마, 폐허의 처마 밑에

​자유의 둥지 사랑의 둥지
부드러운 혁명의 둥지
하나둘 트는 것이 보이고 

 

- <지리산의 봄>(고정희, 문학과지성사,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