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우리말 이야기] 생사여탈권(?)

들꽃 호아저씨 2022. 5. 3. 11:33

 

 

우리말 바루기 197 - 생사여탈권(?)

 

`경제 검`이라 할 수 있는 금융감독원은 각종 법규와 감독 규정을 어긴 금융기관들의 사활(死活)을 결정할 수 있는 정부 기관이다. 또한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당의 대표는 정치 후보생들의 정치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하거나 기업의 사활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얘기할 때 `생사여탈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에도(江戶)시대 무사들의 생사여탈권은 그들이 섬기는 바쿠후(幕府)의 수장 쇼군(將軍)에게 있었다."

 

"이사회가 무력한 것은 소유주가 월급쟁이 이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생사여탈권`을 검색해 보니 128건으로 `생살여탈권`(13)의 거의 열배나 되었다. `생사여탈권`이 맞는 표현인 줄 알고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생사여탈권``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의 잘못이다.

 

생사(生死)`삶과 죽음`을 뜻하지만 생살(生殺)`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을 말한다. `삶과 죽음을 주기도 하며 빼앗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한다`는 뜻으로 `남의 목숨이나 재물을 마음대로 함`을 얘기할 때는 `생살여탈권`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생살`(살리고 죽임)`여탈`(주고 빼앗음)의 대구(對句)가 맞아야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생살지권(生殺之權)` `살활지권(殺活之權)` 등이 있다.

 

2003/12/15 중앙일보

 

 

 

 

 

[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생사여탈권

 

박보검 신드롬을 일으켰던 TV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18일 막을 내렸다. 또 다른 사극 옥중화도 여주인공 옥녀가 옹주라는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며 인기를 더하고 있다. 정실 왕비가 낳은 딸이 공주이고, 옹주는 빈()이나 귀인(貴人) 등 후궁의 딸을 말한다.

 

 생사여탈권.’ 숨 막히는 권력 암투가 묘미인 사극을 볼 때면 떠오르는 말이다. 한데 이 낱말, 사전에는 없다.

 

 생사여탈권은 생사+여탈+으로 이뤄진 말이다. 생사(生死)삶과 죽음’, 여탈(與奪)주는 일과 빼앗는 일이다. 그러니 생사여탈권은 사느냐 죽느냐, 주느냐 빼앗느냐의 권리. 그런데 권리는 주느냐 빼앗느냐와는 어울리지만 사느냐 죽느냐와는 어색하다. 살고 죽는 것은 누구의 권리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니.

 

 이 권리와 어울리는 건 살리느냐 죽이느냐’, 생살(生殺)’이다. 죽이고 살릴 사람의 이름을 적어둔 명부를 살생부(殺生簿)’ ‘생살부(生殺簿)’라 하지 않는가. 우리 사전이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만을 표준어로 삼은 까닭이다.

 

 그런데 사전은 생사여탈과 생살여탈은 둘 다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다. 생사여탈을 입길에 올리는 이가 많다 보니 생사여탈생살여탈의 의미도 있다고 본 것. 그래놓고 ()’자가 붙은 생사여탈권은 인정하지 않고 입길에서 멀어진 생살여탈권만 표준어라 고집한다. 생사여탈권을 표준어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생사여탈을 표제어에서 빼야 한다.

 

 사극 하면 상소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조신(朝臣)이나 유생이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자신의 뜻을 임금께 올리는 게 복합(伏閤) 상소.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달라는 뜻으로 도끼를 메고 올리는 무시무시한 상소가 지부(持斧) 상소.

 

 웃전이라는 말도 기억하자. 이 말은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이나 임금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윗전이라고 하면 안 된다.

 

 , 연극이나 소설 등에서 마지막 장면을 대단원(大團圓)’이라고 한다. 이를 멋스럽게 표현하느라 대단원의 막이 오르다로 쓰는 이도 있지만, 대단원의 막은 오르지 못한다. 대단원과 비슷한 말이 대미(大尾)라고 생각하면 혼동을 막을 수 있다. 일의 시작이나 발단을 뜻하는 말은 서막(序幕)’이니, 그런 때는 서막을 열거나 올리면 된다.

 

손진호 어문기자songba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