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허용'이란 예술적 효과를 얻기 위하여 용인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정으로, 문법, 어법, 리듬 등에서 벗어남을 말합니다.고어나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도 시적 허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말바루기] 기름에 절은(?) 새
“양식 망에 붙어 있는 씨조개를 살펴보니 죄다 기름에 절은 상태로 입을 벌리고 있네요”라며 한숨짓는 어민들, “기름에 절은 자갈을 닦고 닦아도 끝이 보이지 않지만 고통 받는 주민을 생각하면 쉴 틈이 없어요”라며 분주한 자원봉사자들, “시커먼 기름에 절은 채 금방이라도 숨을 놓아 버릴 듯 눈을 껌뻑이던 뿔논병아리의 사진이 잊히지 않네요”라며 안타까워하는 시민들….
온 국민을 시름에 젖게 한 충남 태안 앞바다 원유 유출 사고. 그 현장을 지켜보면서 저마다 착잡한 마음을 한마디씩 토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많은 사람이 간과한 말이 하나 있다. 바로 ‘기름에 절은’이란 표현이다.
기름·땀 따위의 더러운 물질이 묻거나 끼어 찌드는 것을 이르는 ‘절다’는 ㄹ불규칙동사로, 어간의 끝소리 ‘ㄹ’이 ‘ㄴ·ㄹ·ㅂ·시·오’ 앞에선 탈락해 ‘절어’ ‘저니’ ‘저오’와 같은 꼴로 활용된다. 따라서 ‘기름에 절어’란 말은 가능하지만 ‘기름에 절은’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기름에 전’이라고 해야 맞다.
“기름에 전 흡착포와 포대를 실은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해변을 오가고 있다” “주름 진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기름에 전 작업복에 방울져 떨어졌다” “기름에 전 조끼 안에는 땀방울이 흥건하다”처럼 쓰인다.
“땀에 찌들은 작업복” “다 헐은 옷” “검게 물들은 바다” 등도 마찬가지다. ‘찌든’ ‘헌’ ‘물든’이라고 해야 한다.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으’를 넣어 사용하지만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2008/01/06 중앙일보
[우리말 바루기] 파랗게 개인(?) 하늘
말복이 지난 지도 한참이나 됐지만 여전히 덥다. 가끔씩 하늘이 깜깜해지고 지역에 따라 소나기가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금방 파랗게 ‘개인’ 하늘에서는 다시 태양이 불볕을 퍼붓는다. 맑은 날보다는 우중충하게 구름 낀 날이 고맙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위에서 ‘개인 하늘’이라고 쓰는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흐리거나 궂은 날씨가 맑아지다’란 의미로 쓰이는 단어는 ‘개이다’가 아니라 ‘개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갠 하늘’이라고 쓰는 것이 옳다. 인기 있는 가요나 예술 작품에 어문규정에 맞지 않는 구절이 들어갈 경우 쉽게 확산되는데 이 경우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제목이 ‘어떤 개인 날’로 번역된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기본형을 잘못 알고 있어서 틀리기 쉬운 표현들을 몇몇 더 찾아보자. 예전 시골집들은 짚을 엮어 지붕을 덮은 곳이 많았다. 짚 외에도 부유한 집에서는 기와를 썼고, 산촌 등에서는 얇은 돌이나 나무 조각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재료로 지붕을 올리는 일을 표현할 때 ‘굴피/기와/짚으로 지붕을 이은 집’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지붕을 인 집’이라고 해야 바르다. ‘기와나 이엉 따위로 지붕을 덮다’란 뜻의 단어는 ‘잇다’가 아니라 ‘이다’이며 ‘이고, 이어, 이니, 인’ 등으로 활용하므로 ‘이은’이 아니라 ‘인’이 옳다. ‘강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갈대로 지붕을 잇고’ ‘사당 문을 고치고 지붕을 새로 이으니’ 같은 표현도 ‘갈대로 지붕을 이고’ ‘지붕을 새로 이니’라고 해야 한다.
“시간 되면 우리 회사에 잠깐 들렸다가 가세요”처럼 ‘지나는 길에 잠깐 들어가 머무르다’란 뜻으로 ‘들리다’를 쓰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이때도 ‘들르다’가 바른 표현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니, 들러서, 들르면’으로 활용하므로 ‘들렸다가’가 아니라 ‘들렀다가’로 해야 한다. “우리 집에 들리면 제 소식 좀 전해 주세요” “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려서 이 편지 좀 부쳐 줘”의 경우도 ‘우리 집에 들르면’ ‘우체국에 들러서’로 해야 바른 표현이 된다.
김형식 기자
[우리말 톺아보기] 하늘을 날으는 원더우먼?
40대 이상은 ‘날으는 날으는 원더우먼’으로 시작하는 미국 드라마 주제가를 기억할 것이다. ‘원더우먼’은 최근에 다시 영화로도 만들어져 요즘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다. 사실 원더우먼은 슈퍼맨처럼 스스로 하늘을 날지는 않는다. 투명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데, ‘투명’하다 보니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날으는’이 아니라 ‘나는’이 맞는 표기인데, 노랫말에 ‘나는’ 대신에 ‘날으는’을 쓴 경우는 이 외에도 꽤 있다. 맞춤법을 몰라서일 수도 있지만, 박자를 맞추려고 일부러 쓴 경우도 있는 듯하다. 사실 노랫말이나 시, 상품명 등은 창작물에 속하기 때문에 맞춤법에 예외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흔히 ‘시적 허용’이라고 부르는 것의 확대로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까지 맞춤법의 잣대를 대서 고치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노랫말로 허용됐다고 해서 그것을 맞는 표기로 허용한 것은 아니기에, 노래나 광고로 맞춤법을 익히는 것은 위험하다.
‘날으는’이 아니라 ‘나는’으로 적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말에서 어간이 ‘ㄹ’로 끝나는 동사나 형용사가 독특하게 활용을 하기 때문이다. ‘날다’, ‘놀다’, ‘저물다’와 같은 말은 어간 ‘날-’, ‘놀-’, ‘저물-’에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면 어간의 ‘ㄹ’이 탈락한다. 그래서 ‘놀으는 아이들’, ‘저물으는 해’가 아니라 ‘노는 아이들’, ‘저무는 해’가 되는 것이다. 특정한 어미와 결합할 때 어간의 일부가 탈락하는 것으로는 ‘잠그다’와 같은 말도 있다. ‘잠그다’, ‘담그다’와 같이 어간이 ‘ㅡ’로 끝나는 말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결합하면 ‘ㅡ’가 탈락하여 ‘잠가’, ‘담가’가 된다. 이것을 ‘잠궈’, ‘담궈’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운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푹 절은
'사람이 술이나 독한 기운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다'의 뜻인 '절다'는 '전'으로 활용합니다. 또 '~에 절다'의 구성으로 주로 쓰이므로 '패배감에 푹 전 말투'로 쓰는 것이 적절합니다.
거두웠다->거뒀다, 절은...
'거두다'를 활용하면 '거두었다'가 되고, '거두었다'를 줄여 쓰면 '거뒀다'가 됩니다. '거두웠다(거두우었다)'는 쓸데없이 피동접미사 '우'를 결합한 말로 바르지 않습니다. 또한 '절다'는 불규칙 활용을 하는 동사로 '절고, 절어, 저니'처럼 일부는 'ㄹ'이 탈락하고 활용합니다. 따라서 관형사형으로 쓸 때도 'ㄹ'이 탈락하고 '전'이 됩니다. '만들다'의 관형사형이 '만들은'이 아니라 만든'이 됨을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덧붙이면, 맞춤법 문제는 아니지만 '피로감'에서 '감'은 '느낌'을 뜻하는 한자어 접미사이므로 뒤에 오는 서술어 '느끼다'와 겹칩니다. 따라서 '피로감' 대신 '그러한 상태'를 의미하는 '피로'만 써도 좋습니다. 물론 '피로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좀 더 군더더기 없는 표현으로 쓰면 어떨까요?
출처 우리말 배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