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 기자의 바른말 광] 꾸물꾸물/끄물끄물
'첫날은 햇빛 쨍쨍, 둘째날은 꾸물거리는 흐린 하늘, 셋째날은 보슬보슬 비가 내리더니 결국 마지막 날은 천둥을 동반한 강한 비가 내렸다.'
어느 골프대회를 다룬 스포츠신문 기사에 나온 한 구절이다. 한데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뜻이 다른 말을 잘못 쓰는 바람에 문맥이 이상해졌다. 바로 '꾸물거리는'이라는 말 때문이다.
'꾸물거리다'가 무슨 뜻인지는 대개 안다. 그래서 '지렁이가 꾸물거린다, 시험지에 빨리 답을 쓰지 않고 꾸물거린다, 발가락을 꾸물거린다'처럼 쓴다. 살펴보면 대체로 '사람이나 동물의 행동'에 대해 쓰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는 '하늘이 꾸물거린다'고 썼으니 이상해질밖에….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 게으르고 굼뜨게 행동하다, 신체 일부를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 가운데 어느 것도 하늘에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움직이는 건 하늘이 아니라 구름이다.
이 자리에는 '날씨가 활짝 개지 아니하고 자꾸 흐려지다'라는 뜻인 '끄물거리다'를 써야 옳았다. 그러니 '둘째 날은 끄물거리는 흐린 하늘'로 써야 했던 것. '끄물거리다'는 이렇게 쓴다.
'아침부터 날이 끄물거리더니 오후에 접어들자 기어이 비가 쏟아졌다./날도 끄물거리는 게 영 놀러 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부사 '꾸물꾸물/끄물끄물'도 같은 방법으로 구별하면 된다. 즉, '지네가 꾸물꾸물 기어간다/하늘이 끄물끄물 흐려졌다'처럼 쓰면 되는 것. 여하튼 하늘·날씨에 관한 것은 '끄물거리다, 끄무레하다, 끄물끄물하다'로 쓰면 된다. 경상도에서 많이 쓰는 '꾸무리하다' 역시 '끄무레하다'라야 한다.
한데, 일본말로 '구름이 끼거나 흐림, 혹은 그늘짐, 어두움'을 '쿠모리(曇り)'라 한다. 그래서 '꾸무리하다'가 혹시 일본말에서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중세 한국어에 '끄무레하다'의 뜻을 가진 '그므록하다'가 있으므로 이 단어를 일본어에서 온 말로 볼 수는 없을 듯하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혹시 경상도 말이 일본에 건너가 이렇게 정착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2008/03/25 부산일보
[돋보기 졸보기] 97. 꾸물꾸물과 끄물끄물
부침개가 생각나는 ‘꾸물꾸물’한 날씨?
"내일은 노릇노릇한 김치전이 생각나는 날씨가 되겠습니다. 날이 꾸물꾸물 흐리겠고,비도 오겠습니다." 얼마 전 한 케이블방송에서 내보낸 기상안내의 한 대목이다. 비가 잦은 계절이다.비가 오려고 구름이 잔뜩 끼거나 날이 흐려있는 상태를 가리켜 '날씨가 꾸물꾸물하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이 실은 좀 이상하다. 행동이 굼떠 느릿느릿한 사람한테도 우리는 "너 왜 이렇게 꾸물꾸물해!"라며 야단치곤 하기 때문이다. 이 때의 '꾸물꾸물'은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는 모양,게으르고 굼뜨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은 날씨를 나타낼 때의 '꾸물꾸물'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인 셈이다. '꼬물꼬물'이란 말도 쓰는데 이는 '꾸물꾸물'보다 좀 작은 느낌을 주는 말이다. '꼬물꼬물'보다 더 여린 느낌을 주는 말은 '고물고물'이다.
'꾸물꾸물'은 두 가지 뜻으로 다 쓰는 말인가? 아니면 어느 하나는 틀린 말일까? 사전에서는 '꾸물꾸물'을 '몸을 느리게 자꾸 움직이거나 행동이 굼뜬 것'으로 풀고 있다.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다니다' '행동이 꾸물꾸물하다'처럼 쓰인다. 그러면 날씨에 쓰인 '꾸물꾸물'은 무엇일까. '날씨가 활짝 개지 아니하고 자꾸 흐려지는 모양'을 나타내는 우리말은 '끄물끄물'이다. '아침부터 하늘이 끄물끄물하더니 마침내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식으로 쓴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다'고 하는 것은 이 '끄물끄물'을 정확히 모른 채 발음이 유사한 '꾸물꾸물'을 가져다 쓴 것이다. 따라서 화창하게 개었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을 때 "하늘이 갑자기 꾸물꾸물해졌다"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정리하면 '꾸물꾸물'은 동작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고,날씨의 상태를 말할 때는 '끄물끄물'을 쓴다. 이들은 동사를 만드는 접미사 '-하다/-거리다/-대다'와 자연스레 결합해 각각 '꾸물하다/거리다/대다' '끄물하다/거리다/대다'라고 쓰기도 한다
2009/06/12 한국경제
끄물-거리다 「동사」
「1」 날씨가 활짝 개지 아니하고 자꾸 흐려지다. ‘그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우리는 끄물거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발을 미루지 않았다.
⸱날이 끄물거리더니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송기숙, 녹두 장군≫
「비슷한말」 끄물끄물하다, 끄물대다
「2」 불빛 따위가 밝게 비치지 아니하고 자꾸 침침해지다. ‘그물거리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불씨가 끄물거리며 꺼지려 하다.
⸱끄물거리는 남폿불 아래에서 숨을 거칠게 쉬고 입을 조금 연 채 모로 누워 있는 수영의 얼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심훈, 영원의 미소≫
「비슷한말」 끄물끄물하다, 끄물대다
꾸물-거리다 「동사」
「비슷한말」꾸물꾸물하다
「참고 어휘」구물거리다, 꼬물거리다
1
「1」 매우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 ≒꾸물대다.
⸱올림포스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 미래 영원히 까마귀 까치가 멋대로 날고 지렁이와 굼벵이가 꾸물거리는, 그저 산이다.≪김성한, 개구리≫
「2」 게으르고 굼뜨게 행동하다. ≒꾸물대다.
⸱꾸물거리지 말고 얼른 나오너라.
⸱소주를 가지고 오라는데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건가?≪김용성, 리빠똥 장군≫
2 【…을】
신체 일부를 느리게 자꾸 움직이다. ≒꾸물대다.
⸱입을 꾸물거리다.
⸱발가락을 꾸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