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322

은수에게

​ ​은수에게 은수야, 만 스물하고도 세 해, 삼월하고도 셋째날 오늘 너의 생일에 나는 너의 의미를 가슴에 새긴다. 생일은 해마다 찾아오는 습관 같은 의식(儀式)일 뿐일까. 일기일회(一期一會) 너는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맺은 딱 하나뿐인 소중한 인연이고 생일인 오늘 너를 대면하는 이 순간은 내 생애에 주어진 딱 한번의 소중한 시간이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우리에겐 매일매일이 의미있는 날들이지만, 오늘 같은 네 생일날은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지. 망각은 시간과 나란히 간다지만 너에 대한 기억은 거꾸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고 분명해지고 있어. 비록 너의 신체는 한줌의 뼈로 화했지만 너의 정신과 마음은 더 선명하게 남아 유한한 존재인 내게 영원한 삶의 지혜를 가르쳐준다. 나는 너로 해서 좀더..

기억 2023.03.03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공부

은수야 네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 시린 겨울을 견디고 새봄이 오듯 동글동글 말간 네가 오는구나. 맑디맑은 아이. 새봄에 태어난 봄 아이. 은수. 3월 3일, 네 생일이야. 네 생일 케이크에 촛불을 밝히고 네 눈을 바라보며 축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수야, 생일 축하해! 은수가 시리지 않도록 마음 가득 온기를 전한다. 지나간 겨울, 우연히 겨울산을 보았지. 꽃이 피고, 푸름으로 꽉 찼던 산은 속까지 훤하게 보였어. 나뭇잎 하나 달고 있지 않은 앙상한 나목들은 자신을 다 드러내고도 당당하게 서 있더구나. 순간 생각했지. 나는 저 나무처럼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을까. 나체로 서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당당하고 부끄럽지 않은 삶은 뭘까. 스스로 생긴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기억 2023.03.03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416 존엄하고 고귀한 우리의 벗들에게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0416 -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송경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1917sr.tistory.com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구성:프렐류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에트, 지그 〈첼로 모음곡 2번〉 D..

기억 2023.02.24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416 존엄하고 고귀한 우리의 벗들에게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0416 -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송경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1917sr.tistory.com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구성:프렐류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에트, 지그 〈첼로 모음곡 2번〉 D..

기억 2023.02.23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제 페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II : 뭉클김언경

신선희(1965년 2월 10일(음력)-2021년 4월 1일) 신선희 기일: 양력 2021.04.01 지난 금요일 아침, 제 지인이 다시 열흘이 넘게 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몸과 마음이 너무 쇠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위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에게 제가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서 말이라도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파주로 달려갔습니다. 사실은 그날 일이 많이 밀려서 여유가 없었어요. 하지만 늦는만큼 불안만 이어질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달려갔습니다. 자리에 누워있다가 저를 만나러 느릿느릿 들어오는 그분을 보는데, 눈물부터 났습니다. 저를 만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늘 배시시 웃어주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

기억 2023.02.14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416 존엄하고 고귀한 우리의 벗들에게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 : 마르크 코페이 - 0416 -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송경동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Suites violoncelle JS Bach / 마르크 코페이Marc Coppey 첼로 첼로Violoncello, 1711년.. 1917sr.tistory.com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 무반주첼로모음곡(Suites No.1-6 BWV 1007-1012) 제작시기1717~1723년 쾨텐 〈첼로 모음곡 1번〉 G장조 구성:프렐류드,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에트, 지그 〈첼로 모음곡 2번〉 D..

기억 2023.02.13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기타 버전) : 페트리트 체쿠 - 오늘 제 페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 뭉클김언경

신선희(1965년 2월 10일(음력)-2021년 4월 1일) 신선희 기일: 양력 2021.04.01 오늘 제 페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어제는 이 아이의 4주기 기일이었습니다. 이 아이와 함께 신문반을 했지만, 워낙 우르르 몰려왔다 와글와글 떠나가는 어린이들이어서 한명 한명의 마음에 신경쓰지 못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 아니고, 그냥 내 딸래미 포함해 아이 친구들과 유익한 시간을 갖자고 벌인 일이라 그 정도만 해도 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외로웠고 세상을 답답해한다는 그 느낌은 고스란히 저에게 왔더랬습니다. 어제 은수를 보면서 속으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한다 말하며 한참 울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너무 많은 잘못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잘못은 그게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냥 어어..

기억 2023.02.09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 알렉산더 라자레프 - 돌멩이 하나 : 김남주

돌멩이 하나 / 김남주 ​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김남주 시전집』(김남주, 창비, 2014) 로그인만 하면 그냥 볼 수 있습니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

기억 2023.02.09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김남주(1946-1994)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살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2023. 02. 04. 00:40

기억 2023.02.04